천재지변에 장애인은 어떻게 대피하나 > 대학생 기자단


천재지변에 장애인은 어떻게 대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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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1년 단위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사 다니는 것에 익숙하다.
  단칸살림이라 이사도 간단했다. 가재도구를 차에 싣고 이것저것 묶어 얹어 놓으면 자동차는 출발했고, 아버지의 새로운 임지로 가서 짐을 풀어놓으면 되었다.
  그런데 항상 이삿짐 싸는 것을 보면 나는 불안해야만 했다. 허드레짐, 심지어는 개가지도 트럭에 실었는데 나는 마루 한 구석에 앉혀놓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다 되었다.”
  이삿짐을 다 싣고 손을 터는 아버지가 그래도 차에 올라타고 나를 버리고 부응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나는 애타게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나는?”
  그제서야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오, 마지막 짐이 여기 있었네.”
 그렇게 해서 나는 아버지의 팔에 안겨 조수석에 올라가 새집으로 묻어갈 수 있었다.

 

 

2. 내가 중학교 1학년 떼의 일이었다. 양옥집이던 우리 집은 지하실이 달려 있는 집이었다.
 방에 들어앉아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불이야!”
 나는 어마지두에 놀라 마루로 나와봤다. 그랬더니 내 눈을 의심할 일이 그곳에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실에 불이 나서 노란 불꽃이 지하실 창을 뚫고 솟구쳐 베란다 가장자리를 널름널름 핥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나도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게 마당으로 몸을 굴리다시피 해서 대피했다.
 “어, 이 집 불났네.”
 “불이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고함을 질렀다.
 이제라도 우리 집을 삼킬 것 같은 불꽃을 보고 있자니 온몸이 떨려왔다. 이빨이 맞부딪히며 떨리는 것은 정녕 두려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재난으로 우리 소중한 집이 망아길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나를 떨게 한 엄청난 공포였다.
 잠시 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자동차가 달려왔다.
 “자자, 비키세요.”
 역시 그들은 소방대원다웠다. 마당 한 구석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나부터 길 건너 앞집에 번쩍 안아다 앉혀 놓았다 그리고는 소방호스가 엄청난 양의 물을 뿜어내자 불길은 곧 잡혔고 우리 집은 그을음이 좀 묻은 것만 빼고는 큰 피해 없이 화재사건은 막을 내렸다.
 소방대원들이 철수하고 식구들만 남아서 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 새 해기 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앞집으로 피신해 있는 나를 거들떠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집 대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피신한 집의 아이에게 말했다.
 “야, 우리 집에 가서 나 여기 있다고 말 좀 해줘.”
 잠시 후 나는 아버지의 팔에 안겨 전기가 나가 컴컴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3. 금년에도 어김없이 물난리가 났다. 한반도가 생긴 이래, 지구가 만들어진 이래, 여름철에 비가 쏟아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비가 쏟아져 하천이 넘치면 물난리가 난다는 것도 다 안다. 황하가 그랬고, 이집트의 나일강이 그랬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년 반복되는 수해를 겪고 있다. 라디오에 나온 파주 사는 록가수 윤도현이 말하는 것을 듣고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세탁소를 하는데 기계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물에 잠겼어요. 그런데 수해에 익숙해지니까 고치고 복구하는 것도 빨라지더라구요.”
 그래도 일부 발표를 보니 미리 주민들을 대피시켜 인명피해가 적었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대피를 시켰다 궁금해지면서 그 아비규환에서 장애인들은 어떻게 몸을 빼냈을지도 아울러 알고 싶어졌다.
 장애인은 이 세상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 살고 있다. 상류층에도 하류층에도, 서울에도 부산에도, 미국에도 아프가니스탄에도 장애인은 있다. 그렇다면 분명 파주 문산에도 장애인은 있었을 것이다.
 지체장애인은 나처럼 몸을 굴려서라도 어떻게든 빠져나오겠지만 청각장애인은 어쩔 것인가. 대피하라고 아무리 목 놓아 외쳐도 그 소리를 못 들으면 그냥 물귀신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또한 시각장애인은 어찌 되는가? 소리를 듣고 큰 일이 난 건 알겠는데 온통 물이 들어차면 과연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온몸을 못 가누는 뇌성마비장애인과 물불을 모르는 정신장애인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사실 그 대답도 알고 있다.
 “성한 사람도 살기 힘든데 장애인이 어떻게 대피하는지 알게 뭐야?”

 

※ 필자의 요청에 따라 ‘장애인’을 살려 씁니다.

 

글/ 고정욱 (성균관대 강사,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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