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으며] 고마운 사람들 > 대학생 기자단


[창을 닫으며] 고마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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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 일이 됐습니다. 지난 해 6월에 저희 회사 식구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지요. 출근길에 뒤따라오던 포크레인이 아가씨를 넘어뜨리면서 발등을 바퀴로 밟고 지나갔습니다. 발등의 뼈는 모조리 밖으로 퉁겨져 나왔고 살은 흔적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날은 마침 의사들이 폐업을 선언한 날이기도 해서 더 허둥댔습니다. 다행히 이웃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서 응급조치는 할 수 있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넋이 나가 있었고 아버지 역시 크게 맥을 놓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빨리 달려온 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은 바로 산재노동자협의회 분들이셨어요.

저희는 노동자들이 쓰는 글로 잡지를 만들고 있어서 일하다가 산업재해를 입고 장애우가 되신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편입니다. 사고를 당한 그 식구는 그 노동자 분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자원봉사도 자주 했지요. 이런 사고에 익숙지 못했던 동료들이 그 소식을 그분들에게 전했고 그분들은 바로 달려와 주었지요.

그분들은 하나같이 종합병원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손목 끝에 근육 약간만 남기고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한 분은 자신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믿고 가는 종합병원들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하고 무성의한지 자신의 손을 보면 안다고 하면서요.

그분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종이 자르는 기계에 손이 말려 들어가 손가락이 다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부산의 어느 종합병원에서는 손목을 자르지 않고는 도저히 나을 수 없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손목을 자르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치료 열흘 만에 서울로 와서 전문의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는 손목을 자르지 않고 치료를 했고 그 덕분에 그분은 스스로 옷을 입을 수도 있고 물건을 집어 올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손목을 자르고 치료를 했다면 그럴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종합병원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방금 만나고 온 담당의사의 얘기를 떠올렸습니다. 그 의사는  최악의 상태를 예상한다면 발목을 자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회사 직원의 부모님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저리를 쳤습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29살짜리 아가씨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걸어다닐 생각을 하니까 어찌나 가련하던지요. 그걸 막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의사는 책임 문제 때문에 가장 안 좋은 상황을 예상해서 말했겠지요.

하지만 가족들은 발목을 자른다는 얘기를 쉽게 하는 의사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재노동자들이 추천하는 전문의한테 의논을 해봤지요. 그분은 손이나 발을 다친 노동자들을 주로 치료하는 의사였어요. 환자를 보지 못해 자신은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발목을 잘라서 쉽게 치료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가족들은 마음이 흔들렸지요. 다친 지 48시간 안에 조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태우고 달렸습니다.

지금 그 직원은 발목을 자르지 않은 채 치료를 받으면서 이제 다시 재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종합병원에서도 발목을 안 자르고 치료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고로 저는 아주 귀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뭔가 해줘야 한다고 여겼던 산재노동자들한테서 거꾸로 너무나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책임지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자신의 일처럼 나서 주었던 분들의 고마움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글/ 강순옥(월간 작은책 편집장)

작성자강순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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