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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누구 때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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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때문이라니?

 2년전 쯤 3명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시어머니인 듯한 중년 여인과 젊은 부인 그리고 생후 1년 남짓한 아기였다.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상담이 시작되었다. 많은 장애아동을 만난 경험으로는 뇌성마비가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늘 습관대로 성급한 진단이나 평가를 뒤로 미루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병원에는 가 보셨겠지요? 의사의 소견은 어떠했습니까?"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시어머니가 다그치듯 얘기를 꺼냈다. "이 아기는 뇌성마비랍니다. 참 기가 막혀서. 도대체 누구 잘못이죠? 남편입니까, 아니면 우리 며느리입니까? 우리 집안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젊은 부인은 아기만 안고 줄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누구 죄라니? 참 기가 막힌 질문이었지만 나름대로 조리를 갖추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뇌성마비란 유전이 아니며 진행성도 아니라는 점, 출산 전이나 출산 시 또는 출산 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뇌성마비가 될 수 있지만 결코 며느리의 잘못은 아니며 병원의 정확한 진단이 나왔으니 이제부터라도 조기치료를 받게 하여 아기의 2차 장애나 신체의 변형을 막아야 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아기의 재활에 가족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장시간 역설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차치하고 모든 잘못은 며느리에게 있고 이혼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상담실을 나가버렸다.
 다시금 상담내용을 회고했다. 이유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장애의 원인은 누구의 잘못이나 죄의 결과인가? 당치도 않는 발상이지만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많은 부모들도 죄 때문에 자식이 장애인이 되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3살 때 뇌막염을 앓아 오른쪽 팔다리에 장애를 입은 친구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고등하교 졸업 후 진로문제로 상담하러 왔는데 시종 눈물을 흘리시며 자기가 죄가 많아서 자식이 장애인이 되었다고 한탄조로 이야기를 했다. 분위기는 조금 착잡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짚고 넘어가고 싶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죄 때문이라니요? 무슨 죄요? 사기죄입니까? 남편 모르는 다른 남자라도 사귀었단 얘긴가여? 아니면 살인이라도?" "아뇨 그런 죄가 아니라 있잖아요. 나면서부터 뇌가…" "죄 때문이라면 아니 아주머니 때문이라면 왜 아이들이 장애인이 되었나요. 당신이 되어야지요."
 장애의 종류는 많지만(뇌성마비, 정신지체, 유아자폐, 척수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 등등) 특히 뇌가 발달시기에 손상을 입어 장애가 되는 경우에는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골치 아프게 원인을 밝히는 것보다 죄 탓이나 팔자소관으로 돌리며 차라리 위안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생각 때문에 이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더욱 깊은 지도 모른다. 죄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면 솔직히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장애인이 되어야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손목을 절단하고 또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면 발목을 자르고, 못 볼 것을 보면 눈을 빼버리고, 헛소리하면 말을 못하게 하고… 그러면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은 자는 어떻게 하나?
 죄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면 또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정치적 야망 때문에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들이대어 수백만 명의 선량한 인명을 살상한 사람도 장수를 누리고 있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젊음을 바친 수많은 젊은이들 죽고, 감옥에서 고생하도록 한 어리석은 정치인들도 버젓이 살아있는데 권력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를 챙긴 사람들도 활보하며 큰소리치는데 도대체 젊은 어머니들이 무엇을 잘못하여 자식을 장애로 만들겠는가.
 아니 장애인들이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장애를 입었는가 말이다. 진정 죄의 대가라면 오늘이라도 휠체어에 의지하여 평생 암담하게 살아갈 사람이 더욱 많아야 하지 않는가.
 자식의 장애를 발견한 젊은 어머니는 심한 자책감과 절망에 빠진다. 동창생 모임도, 사교도, 심지어 자기 몸단장까지 포기하고 자식의 재활에 모든 힘을 쏟는다. 웃음을 잃어버리고 작은 일에도 많은 눈물을 흘린다. 시댁, 남편, 비장애인, 다른 자식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2년도 아닌 평생을 바쳐야 하는 재활과정 속에서 너무도 빨리 늙어버린다. 젊은 어머니는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저 참고 또 참는다.
 장애는 죄의 결과가 아니다. 단지 장애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질서의 파괴일 수 있다. 죄의식 속에 있는 어머니들에게 소망을 드려야 한다. 어머니의 고통을 분담해 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눈물을 씻어 줄 수 있는 재활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는 죄의 부산물이 아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죄인이 있기 때문이다.

글/김선규

 

작성자김선규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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