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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지뢰와 장애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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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마땅히 붙어야 할대인지뢰 전면 금지를 위한 조약 초안이 지난 9월 17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채택되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진 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은 미국이 그 지뢰회의에서 대표단을 철수시킨 일이었다. 미국은 ‘지구상의 모든 대인지뢰를 조건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대다수 회의 참가국들은의 의견과는 달리 전면금지조약을 9년 동안 유예하고 한반도를 예외로 하자고 주장하다가 거부당하자 그 중요한 모임에서 물러가 버린 것이다.
  만약 미국이 오슬로회의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우리의 별’인 지구에 묻힌 대인지뢰를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버리고 다시는 묻지도 않겠다는 결의에 동참했다면 세계는 변화를 향한 거대한 한 걸음을 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자국의 이익과 ‘한국의 국방’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한 채, 세계 평화와 인간의 목숨을 존중하기보다는 자국 이기주의와 전쟁 위협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대인지뢰 금지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미국이 끝까지 양보하지 않은 지역이 하필이면 한국인가? 바로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 지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족과 장애우가 된 이들로서는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특히 모르고 지뢰를 밟거나 깔고 앉았다가 팔다리를 잃거나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로서는 ‘나는 비록 이렇게 되었지만 가족과 이웃, 나아가서 동포들이 그런 참사를 겪지 않도록 대인지뢰를 한반도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 것이다.
  대인지뢰는 무엇이고 미국은 왜 그렇게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라는 곳에 계속 그것을 1백만개나 묻어두고 싶어하는가? 그리고 러시아, 중국같은 나라는 왜 애초부터 오슬로회의에 참석도 하지 않았는가?
  한꺼번에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핵무기에 비해 한번 터지면 대여섯명 아니면 한사람의 삶을 파탄시키는 대인지뢰, 그것을 추방하려는 국제적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고 우리 겨레가 지뢰 없애기는 물론 궁극적인 군비축소를 통해 통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보자.
  대인지뢰를 전면금지하자고 맨처음 주장한 나라는 캐나다였다. 1996년 6월 캐나다정부는 그런 목표를 위해 오타와에서 국제적 모임을 주도했다. 그래서 대인지뢰 추방을 위한 운동과 그 과정을 ‘오타와 프로세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유엔과는 무관했으나, 세계 여라 나라의 관심이 워낙 뜨겁고 인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서 유엔 사무총장이 오슬로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오슬로에 앞서 지난 6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는 98개의 나라가 참여해서 ‘반지뢰선언’에 서명했다. 그리고 오슬로 회의에는 정식 참가국이 90개, 제안권과 투표권, 발언권이 없이 간 나라는 한국을 비롯한 27개국이었다.
  한 통계를 보면 지금 세계에는 68개국에 1억1천만개의 대인지뢰가 묻혀 있다고 하낟. 이집트가 2천3백만여개로 가장 많고, 이란이 1천6백만개, 앙골라 1천 2백만개, 중국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1천만개씩 흙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대인지뢰가 1억1천만개나 묻혀 있다는 것은 세계 인구 40명에 한개꼴이 되는 셈이다. 지뢰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장애우가 되는 사람이 해마다 2만 6천여명이나 된다고 하니 20분에 한명꼴로 피해자가 나온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그 80%는 어린이들이다.
  대인지뢰가 다른 흉기나 자연재해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않는 까닭은 피해가 소규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웬만큼 희생이 나지 않으면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거나 작게 다루므로 ‘가랑비에 옷젖듯 하는’ 대인지뢰의 피해는 무시되기 일쑤인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30여년 전에 군대생활을 하면서 대인지뢰가 빚어내는 재난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똑독히 보았다. 남과 북이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는 비무장지대에는 최전방 초소들이 있고 그 뒤쪽의 철책선에는 물샐틈 없이 병력이 배치되어 있다. 그 자리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군인들이야 지뢰를 밟을 위험이 없는데, 문제는 수색이나 정찰을 하러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는 장병들이다. 그들은 미리 교육을 받았으므로 지뢰를 피해가는 길을 알고 있으나 어디 사람이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캄캄한 밤, 비나 눈이 퍼붓는 날에는 길을 잘못 들어 지뢰 위에 발을 올려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몸뚱이가 산산조각이 나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가 장애우가 된 군인들이 6.25전쟁 이래 얼마나 많을까?
  비무장지대만 위험한 게 아니다. 강원도를 비롯해서 북한군이 침투해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지역과 부대 언저리에 묻힌 대인지뢰들이 무고한 주민들, 버섯이나 나물을 캐러간 사람들의 목숨을 앗는 일도 드물지 않다.
  대인지뢰는 장애를 끊임없이 빚어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남한에서 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은 북한의 남침 위협에 대비해서 대인지뢰를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한국 정부도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북한군이 침투해 들어오리라고 예상되는 통로들에 꼭 대인지뢰가 묻어두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허점이 적지 않다. 탱크는 대전차지뢰가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이 없고, 지상으로 공격해 오는 병력은 휴전선을 요새처럼 만들어 놓고 경계하는 보병과 포병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군사전문가들이 보기에 대인지뢰없는 비무장지대는 방어태세가 허술해진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북한군의 이동을 샅샅히 밝혀내는 위성탐지 체계를 가진 미군이 있는 한 크게 걱정할 일은 못된다고 본다.
  나는 미국과 러시아, 중극이 대인지뢰 추방운동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데는 무기수출이라는 요인이 작용한다고 믿는다. 해마다 대인지뢰 국제시장에는 5백만~1천만개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거기서 나오는 총이윤이 5천만~2억달러라고 하니 무기장사들이 그것을 포기할 리가 있겠는가?
  우리 겨레는 세계 유일, 최후의 분단국가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외세의 손에 맡긴 지가 반세기나 된다.
  통일을 이루려면 남과 북이 과감하게 군비를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평화 공존의 길을 닦아야 한다. 그 첫걸음이 대인지뢰 제거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글/ 함께걸음 편집부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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