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복지칼럼] 일만큼 중요한 복지는 없다. > 대학생 기자단


[김종인의 복지칼럼] 일만큼 중요한 복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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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여러 가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며 미국 국민으로부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요인에는 일을 통한 복지 실현이 주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4월30일 미 상무부가 발표한 1/4분기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4.2%를 기록해 지난해 4/4분지93.7%) 보다 높아졌으며 물가와 고용 비용도 안정된 상태를 보이고 있어 계속 호황기조를 유지할 것이 전망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사실 그가 93년 대통령이 되자마자 내놓은 정책 중의 하나가 복지개혁(Welfare Raform)인데, 그것의 제 일성은 ‘일은 좋은 것’(workfare)이었다.

 사회 부조 혹은 복지기금이나 수당으로써 행복과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노동의 신성함을 깨닫고 사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일만큼 중요한 복지는 없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6년 8월 22일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하에 붕괴된 소위 ‘복지 개혁법’이라고 불리우는 ‘개인 책임 및 노동기회조정법’(미국 공법 104-193호)의 시행으로 인하여 모든 복지는 일의 기회제공에서 출발함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법의 주요 골자로 모자세대 등 보호가 필요한 아동가족 부조제도(AFDC)의 근본적인 구조변화와 아울러 장애우와 65세 이상된 저소득 노인 그리고 50만명 이상의 합법적인 영주권자를 위한 부조 프로그램인 식품권(Food Stamp)과 사회보장금의 일환으로 지급되는 소득보충급여(SSI)의 재정을 줄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2년 이후인 2000년부터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요보호가족을 위한 일시 부조(TANF)제도와 함께 노동기회 및 기본기술(JOBS)프로그램 등의 부조 프로그램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같은 복지개혁정책이 새삼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일하는 복지로의 개혁의 목소리가 커졌으며, 지난 5년간 클린턴 행정부의 복지정책의 기조는 일방적ㆍ시혜적 복지는 과감히 줄이는 대신, 이릉ㄹ하면서 복지제도는 최대한 늘려 나간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중증ㆍ중복 장애우의 경우 ‘사회보장금’이라는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한 달에 500~600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애우가 비록 중증ㆍ중복장애우일지라도 자신의 잔존능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직업적 재할을 하려는 극복의지를 갖고 일을 가졌을 때는 지원고용기금의 지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50~60%의 노동력이 있는 장애우의 경우는 50~40%의 부족한 만큼 정부가 지원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지원기금을 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장애우가 비장애우와 함께 통합고용을 해야 하고 둘째, 1중일 2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며 셋째, 시각장애우를 포함한 중증장애일 때 고용에 따르는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장애수당과 지원기금, 얼른 보아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일을 할 때 주어지는 지원기금이 전혀 노동력이 없어 국가에서 책임지는 장애수당 보다도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고, 또한 그런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방적ㆍ시혜적 지를 주도한 부조제도는 대폭 삭감하는 한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지원기금을 대폭 화대하는 데에는 생활보장과 소득보장이라는 이념과 철학이 숨어있는 것 이외에도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이다. 비록 지원고용기금이 다소 더 추가된다고 할 지라도 세금을 내는 사람으로 바뀔 때 그 사람은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을 통한 복지의 실현에는 미국에만이 아니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책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작년 5월 신노동당 집권 때부터 최대 정치적 포부였던 복지제도 개혁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 올해 3월 개혁담당 프랭크필드 장관이 회의에서 밝힌 복지제도개혁 총서는 플레어 총리가 평소 강조해 왔던 일하기 위한 복지의 개념을 구체화시키고, 그 진행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혁명적 신 사회계약으로 불리워지는 이 영국의 복지개혁 프로젝트는 크게 세가지의 기본적인 축으로 짜여져 있다.

 첫째 누구에게든 일을 할 수 있는 존엄성을 회복해 주겠으며 취업 이후 가계 수입이 사회보장 수당 보다 줄어드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가난의 덫‘이라고 불리고 있는 영국의 각종 수당은 일자리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과거 보수당은 실업률 수치를 낮추기 위해 장애우보상금을 확대했고, 독신모들도 수당의 과보호하에 있었다는 것이 신노동당의 판단이다. 신노동당은 퇴직연금에도 칼을 댈 계획이다.

 둘째, 납세장들이 더 이상 부담분 증액을 원치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한 것이다.

 대안은 퇴직 연금제도에 대한 국영민간합동 지원방식이다. 영국정부는 민간 보험회사들이 수백만 퇴직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연간 백억 파운드의 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셋째는 사회보장제도의 관리방식, 공공서비스 등을 뜯어 고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영국의 복지관련 공무원들은 ‘수당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소외계층이 직업을 갖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수당을 받는 사람으로 전락할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1979년 당시 대처가 집권했을 때 ‘일자리가 없는 가구’는 10%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20%로 불어났으며, 연금으로 연명하는 퇴직자가 1백50만명에 이르고 있다. 영국병 치료의 명의로 영국 사회보장의 체계를 세웠다고 극찬을 받았던 대처식 영국 복지정책은 왜 위기를 맞았는지 우리는 곰곰이 분석, 진단해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미국와 영국식으로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나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수당이나 기금제도도 우리는 시행해 본 적이 없다. 이런 때에 복지개혁이라는 단어자체가 우리 나라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도 복지개혁의 논리와 당위성을 찾아야 한다. ‘일이 최선의 복지이며, 일이 최상의 복지’라는 사실에서 말이다.

 사실 최근 우리 사회는 IMF이후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직을 당하지 않으려는 심정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IMF시대에 우리의 일터는 점점 줄고 일을 통한 복지실험을 인식하면서도 정책으로 정립할 수 없는 것이 경제위기 상황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IMF 시대에 걸맞는 직업재활프로그램과 고용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있다.

 굳월산업(Good-Will Industries Inc.)이 그것의 한 모형이다. 미국에서 헬름즈 목사가 1905년 굳월산업을 설립할 당시에도 실업자가 양상되고, 이민온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은 직업은커녕 삶 자체도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 보다도 더욱 심각했던 것은 장애우였던 것이다. 경중 장애우 조차 직장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서 헬름즈 목사는 보스톤시에서 최초로 굳월공장을 만들게 된 것이다.

 사실 굳월프로그램은 두 가지의 큰 방향성과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민간장애우직업재활기관으로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창출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쓰다 남은 물건이나 재활용할 수 있는 물품을 기증하여 중으로써 나눔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더불어 사는 운동’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굳월은 청바지나 구두 그리고 가구 등 사용치 않는 어느 물건이든지 기증을 받는 대신 세금혜택을 기증자에게 돌아가게 하면서 그 물품을 수선하는 일감을 장애우에게 제공함으로써 고용을 증대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었던 것이다.

 96년 한 해 동안 약 10억불의 소득을 올려 82.7%를 인건비로 지출한 것과 6만여 명에게 고용혜택을 주고 있는 이 굳월산업이 얼마나 고용창출과 소득증대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IMF를 극복할 수 있는 일을 통한 복지모형을 개발해야겠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질과 능력 그리고 가능성에 부합하는 직업을 통해 복지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적ㆍ의식적ㆍ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하겠다.


글/ 김종인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

작성자김종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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