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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연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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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들어온 우편물 뭉치를 뒤적이는데 흰 봉투에 얌전히 쓰여진 박연주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내 입밖에 내지 않았던 이름,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가장자리에서 언제나 맴돌고 있던 이름이었다.

나는 서둘러 봉투를 뜯어 편지를 읽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내가 생각했던 박연주가 아니라 어떤 잡지에 실린 내 글을 읽은 한 동명이인이 써 보낸 것이었다.

박연주(일반적으로 나는 내 글에서 가명을 쓰지만, 이것은 그녀의 본명이다)는 내가 종암초등학교 4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의 이름이다. 호리호리한 키에 긴 머리, 눈에 띄게 예뻤던 그녀는 항상 값 비싼 옷으로 성장하고 다니곤 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이리저리 기운 옷은 예사요, 구멍난 옷도 흉이 아니던 시절에 그녀의 옷들은 흡사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이 가져다 준 듯, 하나같이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검정 고무신을 신던 때에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비닐 구두까지도 신고 다녔다.

그녀는 우리가 선망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미워했다. 그녀가 유난히 예쁜 옷을 입고 오는 날이면 우리는 부러움에 못 이겨 우리의 박탈감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어떤 아이들은 연주의 어머니가 술집을 경영하고 있으므로 그 옷들은 ‘더러운 돈’으로 산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아이들은 연주의 어머니는 돈 많은 어떤 노인네의 첩이라고 했다. 연주는 아주 흰 피부와 불그레한 뺨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애들은 그녀가 학교 올 때 화장을 한다고 했고, 그것이 그녀가 자기 어머니처럼 ‘나쁜 피’를 가지고 있는 증거라고도 했다.

연주는 반에서 따돌림당했다. 그러나 마치 그런 일에는 익숙하다는 듯, 아니 차라리 그 쪽이 편하다는 듯이 연주는 교실 뒤쪽에 늘 말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학년말이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복도에서 “불이야, 불! 모두 건물 밖으로 피해가! 빨리!”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혼란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밀고 밀리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공포에 빠져 들었다. 나는 당시 다리 보조기를 신지 않은 상태여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위 내 ‘친구’들은 급한 김에 모두 나에 대해 까맣게 잊고 나가 버렸던 것이다.

타죽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체념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내게 조용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도와줄까?” 연주였다.

그녀는 내 쪽으로 와서는 팔을 잡았다. “내가 업어볼게... 날 꼭 잡기만 해.”

나는 그녀의 목에 매달렸지만 내 무게에 못 이겨 그녀는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녀는 나를 교실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힘이 부족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살고 싶은 욕망에 차마 연주에게 나를 두고 혼자 나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연주도 나를 두고 나가려는 기색이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연주와 내가 업히고 넘어지고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다시 교실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재 경보가 착오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행히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애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았고, 선생님이 오시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극심한 갈등이 생기고 있었다. 이제 난 연주에게 말도 걸고, 다른 친구와 마찬가지로 대해야 할 것인가? 암, 그래야지! 연주는 날 잊지 않고 도우려던 유일한 친구가 아닌가. 하지만 그 애와 얘기하고 친구로 지낸다면 내가 다른 애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한 마디로 나는 두려웠다. 다른 친구들을 모두 잃고 제2의 연주가 되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학기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연주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새 학기에 각기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다시는 그녀와 만나거나 소식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한 독자에게 온 편지는 내게 연주에 대한 기억과 함께 긴 세월 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아 온 죄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이제 내 삶의 마루턱에 서서 뒤돌아보면 비단 연주뿐이겠는가.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접하면서 내가 정말로 그 사람 자체의 됨됨이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했는가? 그의 배경이나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일반적인 평판만으로 그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질시하는 일은 없었는가. 그가 사는 방법을 나의 틀에 맞춰 그를 비판하거나 도외시하는 일은 없었는가?

우리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을 편의상 어떤 집단으로 분류해 놓고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성향으로 연상되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신뢰받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술집을 운영하는 여자들은 모두 도덕심이 부족하고 저속한 취향을 가졌다고 보거나, 고아들은 나쁜 유전자를 지녔고 전과자들은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미리 단정해버리기 일쑤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예가 있다. 지난 번 어떤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의 사회자는 한 장애우가 신청한 노래를 틀고 나서는 “장애우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은 이런 것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마치 장애우는 ‘화성인’이나 ‘우주인’과 같이 일반인과는 완전히 별개의 속성을 가진 그룹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말이었다. 아마도 그 사회자의 의도는 일반적으로 장애우는 고립되고 슬픈 삶을 사는 집단이므로 처량한 한탄조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우 하나하나가 모두 신체적인 불편을 가지고 있기 이전에 삶의 희로애락에 웃고 우는 똑같은 인간일진대 ‘장애우용’ 노래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장단점을 알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꼬리표를 갖다 붙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 꼬리표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방해받는 것은 물론,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어느 책 제목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는 인간성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연주가 우연히라도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리고 아직까지 날 기억한다면, 비록 30년 뒤늦기는 했지만 나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받아주기를 바란다.

미안해 연주야, 정말로 미안해.


글/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작성자장영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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