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인? > 대학생 기자단


[기고] 장애인?

본문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사십여 년 전에 장애인이란 말이 없었다. ‘병신!’ 모든 장애인은 병신이란 한마디로 불렸고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은 병신이 동네에 나타나면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졸졸 따라 다니며 놀려댔다.

  그로부터 한 십여 년이 지난 후 ‘불구자’란 말이 생겼다. 사회의 인식도 그만큼 바뀌었고 바뀐 만큼 대처에서는 장애인들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던 아이들도 없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장애인이란 말로 불리워진다. 또 그만큼 사회의 인식도 달라졌다. 비행기, 기차 삯을 50% 할인받고 전철은 무료다. 또 전화요금 감면이나 고궁 입장료 등 갖가지 공공혜택을 받고 있다. 이 나라 제일의 교육기관인 대학들도 장애인들에게 특별이란 이름을 붙여 교육의 기회를 베풀고 관공서와 큰 건물들은 경사로와 장애인 편의시설을 만들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장애인들의 취업을 알선해주고 출퇴근용 승용차 구입비를 융자해준다.

  듣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진다.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계속적으로 그 변화는 진행 중이니, 이 얼마나 흐믓한 일인가.

  그러나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소리가 진솔하게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씁쓸한 공허함만이 가슴을 채우는 건 왜일까?

  “아, 교회만 나와 봐. 업든가 안든가 아무라도 성전에 데려다 주지. 괜히 나오기 싫으니까 경사로가 없다는 둥....쯧쯔  걔들은 암만 해줘도 고마운 줄도 몰라.... 맘보가 꼭 새우등처럼 휘어 버렸다니까.”

  일례를 들었지만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비장애인들의 말대로 우리 장애인들이 정말 편협된 시각을 가졌기 때문일까? 모나고 비뚤어졌다는 그들의 말이 사실일까?

  글쎄.... 그렇다면 난 그들의 말을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내 몸이 비뚤어진 만큼, 내 다리 한 쪽이 짧은 만큼 내 생각도 분명 골이 패어 있을 것이다.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병에 걸렸다니까 아마 그 긴 시간만큼 난 울어왔고 운 시간만큼 마음이 굳어져 있을 건 당연한 얘기니까. 내 무슨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었다고 나의 고통을 껄껄 웃어 버릴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나의 비뚤어진 시각 때문만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불성실한 자세, 속 다르고 겉 다른 진실하지 못한 마음 때문이다. 따사롭게 웃는 웃음 뒤에 철저하게 감추어진 그들의 위선과 거짓이 우리들의 눈엔 확실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피와 눈물을 빨아먹는 평택 에바다. 장항 수심원, 여수 동백원 같은 대표적인 시설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다는 시골 마을 김천 구레2리 주민들의 나눔열린학교 개교 반대운동, 또한 서울에서도 제일 잘 살고 많이 배웠다는 강남구 삼성1동 주민들의 지애학교 설립 반대와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장애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성추행, 인신매매. 더 나아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에서는 입학을 거부하고 공장에서는 임금을 착취하고 결국엔 해고시켜 버리는 비일비재한 수많은 한과 설움들이 실상 우리 눈앞에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잖은가.

  해마다 무수한 장애인들이 이 모든 것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한다. 외로움과 멸시를 떨쳐내지 못하고 사랑과 생활고에 굶주리다 못해 허기진 배를 쥐어뜯으며 목숨을 끊는다. 정말 장애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한 많은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다.

  복지국가.... 복지사회.... 어우러지는 우리! 결국 이 말들은 가장 열악한 자의 간을 빼먹고 죽음으로 모는 이 사회가, 비장애인들이 자신들을 위장시키기 위해 토해놓은 허울 좋은 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한 계층 장애인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하나 줄 서서 차례차례로 도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때려도 좋고 성추행도 좋다. 다만 목숨만 붙어있게 해달라고 비장애인들에게 울며불며 애원해야 하는가.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물질과 능력주의가 아무리 이 세상에 만연해도 살아있는 인간은 그 자체로서 이미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또한 장애인인 우리는 장애인이라 불리기 앞서 분명 하나의 인간인 것이다.

  비록 위정자들이나 위선자들이 우리를 몰아부쳐도 우리는 아픔과 슬픔, 기쁨과 웃음을 아는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이기에 당당히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또한 어떠한 핍박과 배척에서도 이를 꿋꿋하게 지켜나가야 할 크나큰 막중한 책임도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이 사회의 이중성을 논하기 전에 기득권층 장애인들과 기층 장애인들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 이미 피부로 느끼다 못해 뼛속까지 각인된 차별의 아픔과 불평등의 괴로움을 적어도 우리 안에서만큼은 없애야 할 것이다.

  장애인은 싫든 좋든 장애인이다. 사십년 전의 병신이고 삼십년 전의 불구자인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재산, 금은 비단으로 온 몸을 뒤집어도 병신이며 불구자이고 장애인인 것이다. 비장애인과 운동을 하고 비장애인과 지식을 논하고 권력을 나눈다 해도 그가 장애인이면 그는 장애인인 것이다.

  과연 어떤 장애인이 못났다고, 어떤 장애인이 잘났다고 할 수 있는가. 장애인이 된 게 운명이라면, 실수나 운이 없어서 그리 된 거라고 말한다면 역시 재산을 물려받은 장애인은 부모 잘 만난 것이고 사업을 해 성공한 장애인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또한 판검사가 된 장애인은 자신이 우월해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부모의 끝없는 노력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기름진 밑거름이 된 덕이 아닌가.

  우리가 비장애인을 보고 우리를 당신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 자신 있게 목청을 돋우고 싶다면 먼저 우리가 그들에게 원한 바를 우리에게 실천해 보여야 할 것이다.

  장애인을 보면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다른 장애인을 기피하는 장애인, 사회적 입지에 힘입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장애인들을 비장애인 보다 더 따가운 눈총을 주는 지도층 장애인, 인간 승리를 외치며 열악한 장애인들을 벌레 보듯 하는 성공한 장애인.

  잘났다 생각하는 모든 기득권층 장애인들이 지적으로 열악한 장애인들과 경제적으로 열악한 장애인들은 스스럼없이 부둥켜안았을 때 비로소 복지사회. 평등사회. 모두가 함께 하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엔 모든 장애인들이 파아란 풀밭에 앉아 겨우내 싸안고 있는 아픈 팔, 아픈 다리.... 아팠던 몸통을 거리낌 없이 훌렁 벗어 젖혀놓고 해바라기시키며 싱그러운 웃음으로 자신들의 뼛속 깊은 한들을, 머릿결을 잔잔히 매만져주는 바람에 날려 보낼 것이다.


글/  원명희 (소설가 지체장애)
(필자의 요청에 따라 본문의 ‘장애인’을 살려 썼음을 알려 드립니다.)

작성자원명희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