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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스코리아에 묻혀버리는 소중한 것들

또다른 장애우차별 미인선발대회

본문

  왜곡된 미의 기준 미인선발대회

  나는 다섯 살 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쩌다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돋아오는 반달은 그늘이라도 있지. 우리 희현이는 이렇게 이쁠 수가 있나? 우리 되든 말든 미스 경기에 나가보고 그 다음엔 미스코리아에 나가 보자”라고.

  그러면 아이는 미스 경기나 미스 코리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근사한 것으로 알고 고개를 끄덕이고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는다. 할머니 집에 다니러 오는 손녀들은 모두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이는 예쁜 얼굴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면 늘 듣는 말이 있다.

  “눈은 엄마 닮아서 작구나. 엄마 코는 낮지 않은데 누구 닮아서 이렇게 넓적하지?” 여기에 좀 더 친절한 사람은 견적이 얼마쯤 나올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엄마 아빠가 열심히 돈 벌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 겨울, 아이와 외출을 하려고 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희현이는 그때 모자가 달린 코트을 입고 문밖에 서 있고 나는 둘째 아이의 단장을 위해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새댁이 희현이가 입고 있는 코트의 단추를 여미어주자 희현이가 모자를 재빨리 쓰며 하는 말인즉 “아줌마, 이렇게 하면 내 얼굴 작지요?”라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의 놀라움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책이 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커가는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챠일드(I.L.Child)는 사회화의 과정을 개인과 그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 간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으로 본다. 이 경우 사회화는 ‘사회화하는 면’과 ‘사회화되는 면’의 양면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사회가 개인으로 하여금 학습하게 하는 측면과 주입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화는 이처럼 배우고 가르쳐지는 과정을 통해서 개인이 그 사회의 가치, 태도, 행동유형 등에 동조하게 되어가고 사회적 역할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사회적 존재가 된다.

  한 개인이 성, 지능, 소질 등 천부적 자질을 닦아서 바람직한 인간으로 형성되는 것이 교육이라고 해석하는 종래의 개념과 인간의 전 사회화 과정을 교육이라고 보는 포괄적 해석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유전적 소질과 성차(性差)등 선천적인 요인이 인간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데 비하여 후자는 선천적 요인 보다 사회화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인간을 불확정적이고 가능적인 존재로 보는 폭이 넓어진다.

  아이는 이제까지는 미스코리아가 무엇인지 잘 몰랐겠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또래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자란다. 집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구분된 것이라기보다는 연령에 맞는 놀이에 더 주안점을 뒀었지만 이제는 어린이집에서 또래 집단들과 어울리면서 새롭게 사회화되고 있는 것 같다.

  벌써 바지보다는 치마를 고집하고 모든 색깔을 골고루 쓰기 보다는 빨강과 노랑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한 번도 보지도 못한 ‘세일러문’을 동경하고 엄마인 나더러 그 노래를 불러보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광주항쟁 피무덤위에 열린 미스 유니버스대회의 의미

  우리는 한 인간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잠재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자 아이에게는 여성성을 남자아이에게는 남성성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아이가 진실로 무엇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는지는 도외시한 채 여자 아이에게는 아직도 미스코리아가 최상의 목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또 하나의 장애 아닌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자라나는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고민하게 되는 문제는 무엇일까? 항상 치마 단이 짧아지거나 길어지는 데에 신경을 쓰고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동시대의 사람들에 튀지 않게 따라가고... 그야말로 실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외형에 시간과 정열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비롯한 모든 미인대회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모든 외형적인 아름다움 뒤에는 무서운 폭력이 숨어 있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부정한 무리들은 이것을 가리기 위해 그 많은 피무덤을 뒤로 한 채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유치했듯이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매력인지 한껏 시위하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모든 여성으로 하여금 예뻐지고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도록 한다.

  경쟁처럼 여성의 상품화를 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기에 휩쓸리는 우리 여자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상인들이 서로 맞물려서 이제 미용 산업은 우리 사회에서 거대한 하나의 산업군단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용 산업을 통해 여자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 쌍꺼풀진 눈에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어떤 때는 아랫입술이 약간 뒤집어진 것이 유행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를 가진 서구적인 모습이다. 사실 미의 기준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40년 전만 해도 남자아이 같은 절벽 가슴이 우상이었고, 그 후에는 마릴린 먼로 같은 곡선미에 브리지트 바르도 같은 유방을 가져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백치미를 풍기는 소녀처럼 보여야만 미인인 시기가 있었다. 새로운 미인은 40년대의 그레타 가르보처럼 창백해야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두 허구의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것이 사람들의 모습이고 각 개인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라.

  쌍꺼풀진 눈에 오똑한 코를 주로 하고 있는 비슷한 이미지의 비슷한 얼굴들이다. 오히려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얼굴들이 궤도에서 벗어난 것처럼 화면에 비쳐지는 얼굴들은 너무나 똑같다. 또한 이렇게 평범하고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여자의 본분이자 유일한 명성은 남자의 가슴을 사로잡는 일”이라는 발자크의 말을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미인대회의 출신자들은 사회적 입지에 성공하거나 훌륭한 지위에 있는 남성의 아내가 되기도 한다.

 

장애우의 신체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미인대회

  이 같은 미인대회는 여성의 상품화를 넘어서 인간의 획일화를 유포하는 한편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장애우들을, 부족하고 기준이랄 것도 없는 것에 더욱 더 미달되고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신체를 집중적이고 경이롭게 쳐다보는 사회적 시선을 낳게 만든다.

  예전에 보장구 사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마르시아 J. 스케리어(Marcia J. Schener)라는 사람이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많은 여성장애우들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만족스럽게 보장구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그 외의 여성장애우는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마지못해 사용하거나 아예 기피하고 심지어 포기해 버리기까지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장구 사용을 기피하거나 포기하는 이유는 교육과 사회적인 통념에 연유한다. 과학기술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장애우들은 컴퓨터로 조작하는 보장구의 사용을 두려워하며 또 하나의 이유는 보장구가 장애우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 비장애우들과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장구가 사용자인 장애우들들 신체적 사회적으로 분리시키는데 한 몫 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여성장애우들에게 있어서 보장구는 하나의 귀찮은 물건에 불과할 것이다.

  장애우들에게 있어서 교육과 일, 그리고 보장구는 사회에 참여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매개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적인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그리고 사회적인 우아함만을 열심히 흉내 내라고 배운 여성에게 기계적인 장치는 특수하게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이 자기 평가와 자기 이미지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보장구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고, 궁극적으로 한 개인이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상징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외부에서 주입된 미의 기준을 거부할 때가 왔다. 나의 재능을 살리고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신데렐라가 벗어놓고 간 유리구두를 왕자는 끈질기게 추적하여 다시 신겨놓고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만이 가장 아름답고 선하며 행복한 여성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신데렐라가 신은 유리구두의 실체를 분석해야만 한다. 유리구두를 신으려고 하는 우리 여성들은 소외되고 고독하지 않은지...


글/  이보영 (한국여성연구회 회원)

작성자이보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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