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를 밤에 지낸다고요? > 대학생 기자단


설날 차례를 밤에 지낸다고요?

[해외의 장애인] 일본 오사카에서의 편지 다섯번째

본문

달력을 보니 1월 26일이네요.
새해가 밝았나 싶었더니 어느새 훌떡 한달이 다 지나가고 있어요. 아, 시간 참 빠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그건 일본 사람들 생각이고. 오늘은 설날,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자 온 나라가 자기 고향을 찾아가 가족 친지와 새해를 맞이하는 뜻 깊은 날이네요.
설날! 당연히 우리네 사람들이 보는 한국 달력에는 빨갛게 표시가 되어 있을 테지만, 이곳 일본에서는 그냥 일하는 월요일일 뿐이에요. 정말 무엇보다 경축일이나 쉬는 날이 다른 것에서 외국이라는 것을 절감해요. 특히 한국에서 중시하는 명절 같은 때면 더욱 더.

이곳에 와서 산 지 11년이 지나지만 아직도 공휴일의 개념이 잡히지 않아서, 일일이 달력을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쉬는 날이 언제인지 모른답니다.
물론 일요일이야 쉬는 거지만요. 그리고 막상 빨간 표시가 되어 있는 날이라도 왜 그날 쉬는 것인지 잘 몰라요.

우선 2009년 1월 달을 보면 1월 1일은 새해니까 빨간 날, 그리고 12일 월요일이 빨간 날이었네요. 아마 성인의 날이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만 20세가 되는 해의 1월 둘째 주 월요일을 성인의 날이라고 각지에서 성대한 식전도 열고 크게 뉴스로 나옵니다. 설날인 26일은 달력에도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뉴스에서도 다루는 일이 없지요.

일본에 있는 큰 차이나타운인 요코하마나 고베에서의 중국 사람들의 설맞이 행사에 대해서는 가끔 나오지만, 그것도 하나의 눈요깃거리인 것이지 설날의 의미라든가 풍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럼 일본에서의 새해맞이 풍습은 어떨까요? 일본에서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섣달 그믐날부터 여러 가지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가 바쁘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같이 조상에게 인사를 하는 차례라는 풍습은 없거든요. 단지 한해를 마무리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새해를 맞이해 심기일전을 하며 휴식을 갖는 편이라고 볼 수 있지요. 공식적으로 빨갛게 표시된 날은 1월 1일뿐이지만, 공공기관이나 은행들은 5일 정도 업무를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사도 연말부터 일주일 정도는 업무를 쉬고요. 학교도 12월 27일부터 겨울방학에 들어가 1월 10일 정도까지는 쉬니까, 연말연시는 전체적으로 여유 있게 쉰다고 할 수 있지요.

풍습으로 소개할 만한 것을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먼저 ‘오세치 요리’라고 새해에 먹는 요리를 만들거나 준비해 놓습니다. 붙여진 이름이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온다는 ‘다이(축하라는 뜻)’라는 생선이나, 풍요를 뜻하는 생선의 알, 콩 등을 고운 색깔과 모양으로 갖추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간을 한 요리입니다.

예전에는 집 안에서 여인들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유명 백화점이나 가게에서 몇 달 전부터 주문 예약을 받고 가격도 꽤 비싸답니다.

두 번째로 떡치기를 하지요. 우리가 떡국을 끓어먹는 긴 흰떡과는 달리, 찹쌀을 쪄 절구로 찧어서 만든 떡입니다. 그것으로 ‘가가미 모치’라고 해서 둥글게 빚은 떡을 삼단으로 쌓아 집 안에 장식해 둡니다. 그리고 찰떡을 말려 놓았다가 구워 먹거나 ‘오조니’라고 하는 국에 넣어 먹어요. 10일 정도가 지나면 장식해 두었던 가가미 모치라는 아주 딱딱하게 굳은 그 떡을 깨는데, 어떤 모양으로 깨졌는가에 따라 한해 운수를 점치기도 한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하츠 모데’라는 것이 있어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풍습인데, 일본에는 신사라는 것이 있거든요. 신사는 옛날부터 일본에서 전래되는 것으로 절과는 다르고, 각 지역에 있는 신사마다 모시는 신도 다르지만 일본의 천황을 숭배하는 신도라는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지만요, 그리 오랜 옛날도 아니지만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전장에 사람들을 동원시켰을 때 내세웠던 명분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었다고 해요. 그 당시엔 일본 천황을 사람이 아닌 신이라고 숭배시켰다고 합니다. 신앙을 지배자의 취향에 맞게 구실을 붙여 사람들을 정치에 선동했던 것이지요.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어쨌든 그 신사라는 곳에서 새해 첫날이 되면 찾아가 기원을 하는 것이 ‘하츠 모데’라는 것입니다. 각 신사에서는 그믐날 밤부터 단팥죽을 끓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람들은 신사에서 돈을 던지며 종을 치고 기원을 하고, ‘오미꾸지’라는 것을 뽑아 운세를 보기도 합니다.

일본도 농경문화의 사회였으니 우리의 풍습하고 통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식과 문화를 갖고 있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많아요. 그럼 이곳에 사는 재일동포들은 어떨까요? 물론 집집마다 다르기는 합니다만, 아직까지도 많은 재일동포들은 집에서 차례를 지낸답니다.

그래서 그믐날이 되면 조선시장이라든가, 코리아타운이라고 불리는 곳은 설 용품을 사러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가득하지요. 최근에는 일이나 학업으로 한국에서 건너오신 분들도 많아 꼭 서울의 시장 한복판 같은 분위기가 나지요. 김치야 떡이야, 몸은 타국 일본 땅이지만 우리네 민족의 풍습을 그대로 흉내 내며 새해맞이를 한답니다. 그리고 이런 인사를 나누지요.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요즘이야 한국에서 이런 인사를 나누시는 분들은 연세가 높으신 분들 정도잖아요. 그런데 재일동포들에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보다 예전에 쓰던 이 말을 더 많이 쓰신답니다.

이렇게 새해를 우리식으로 보내는 풍경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가운데, 오늘 같은 설날에 차례를 지내는 분들도 계신답니다. 우리식 날짜로 음력을 헤아려 설날을 지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그냥 일하는 평일이잖아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무리해서 일을 쉴 수는 없으니 낮에는 그냥 일을 하시고 저녁 때 친척들이 모여 음식 준비를 해서 밤에 차례를 지내는 거예요. 보통 한국사람이 들으면 이상하다고 하겠지요. 예의에 어긋난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새해 첫날 가장 먼저 조상께 차례를 드리고 웃어른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한밤중에 하다니…. 하지만 생활을 위해 정해진 자기 일들을 마치고 조상에게 인사를 드리는 이곳의 재일동포들의 모습에서 성의를 갖춰 우리 민족의 명절을 지키고 조상을 받들겠다는 참다운 정성, 소박한 성의를 느낀다면 지나친 칭찬일까요?

사는 곳이 다르고 풍습과 문화도 조금씩 바뀌어 가지만, 우리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고, 자신의 자리와 모습을 제게 되돌아보게 해주었어요.
아직 찬바람이 매섭네요. 새해가 오고 봄이 온다고 해도 세상 형편이 그리 여유로워질 것 같지도 않군요. 하지만 힘을 내야겠지요. 그러기에 더 많이 복을 찾아내고 나눠 줘야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변미양 (지체장애인, 재일동포와 결혼해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작성자변미양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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