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모두에게 따스한 봄날이 올 그 날까지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 대학생 기자단


장애인 모두에게 따스한 봄날이 올 그 날까지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기고]故 이익섭 교수 추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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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익섭 교수 ⓒ전진호 기자
얼마 전 오랫동안 투병하시던 지병 악화로 위독하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먹먹한 소식에 병원 지척에서 일하면서도 찾아뵙지도 못하는 죄스러움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기도 하면 기적이라도 일어날까 누가 되는지 알면서도 선생님의 병세를 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버릇없는 바람과는 달리, 돌아오는 봄을 시샘하는 이 강추위 이른 아침에, 선생님 영면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소식에 처연히 슬프기도 전에 망연하게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대학 시절의 한 강의시간의 추억이 가슴 아리게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요?

10여 년 전 기껏 중앙도서관의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도 만들지 못하는 학교 당국 자세에 잔뜩 약오르고 화났던 저들은 도대체 우리 학교에 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교수, 당신께서 왜 나서지 않는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지 따지고만 싶은 마음이 앞서 강의신청을 했었지요.

96년,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당신과의 강의실의 만남은 ‘내 수업은 학생들이 마음껏 편하게 졸거나 딴 짓을 할 수 있어 지극히 인권적인 수업’이라고 시작한 선생님의 유머에 그냥 무장해제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만난 자리에서 젊은 교수로서의 한계와 학자라는 위치에서의 학내 장애인학생을 위한 활동 어려움을 솔직히 고백하시면서 조용히 뒤(?)를 봐줄테니 저희들이 열심히 싸우라고 하셨었지요.

한 참 나중에야, 당신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어려움 속에서 대학에 입학했고 공부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예비고사에서 뛰어난 성적을 얻었지만 원하는 전공에 원서조차 접수시키기 어려웠습니다. 입학철만 되면 대학의 장애인 입학거부가 매년 신문을 장식하던 그 암묵했던 그 70년대에 대학 당국과 정부는 논란거리를 제거한다는 명분하에 신체검사 규정을 강화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당시 연세대는 응시자격을 교정 시력 0.3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유일하게 신학과만 그런 제한 조건을 두지 않았으며 사회사업학과는 같은 학부인 신학대학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교수님은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 하나로 대학당국을 설득했고 겨우 신학과를 우회적으로 입학하는 방법을 택하셨던 거지요.

학교에서는 다소 딱딱하고 보수적인 교수님으로 학생들이 이해했지만 언제나 야단스럽지 않게 하지만 무겁게 사회 참여를 하셨습니다. 강의실에서는 그렇게 조용히 강의만 하시던 교수님께서 장애인복지신문 편집인으로 이름이 올라있을 때는 다소 의아해했던 철없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열린 세계장애인대회에서 장애인대학생들과 함께 목격한 선생님 발언과 모습은 제 3세계의 장애인들의 억압과 착취를 대변하는 투사의 모습이셨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촛불 집회 과잉진압에 반대하며 경찰청 인권위원도 전격적으로 탈퇴하셨지요.

말보다는 신중함이, 신중함 뒤에는 양보 없는 실천이 뒤따르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그토록 주어진 사명에 아프신 것을 아시면서도 당신을 혹사 시켰던 것을 저희는 왜 미리 말리지 못했을 까요?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라고 말한 어느 이의 말을 그렇게도 온 몸으로 보여 주셨어야만 하셨습니까?

   
▲ ⓒ전진호 기자
며칠 전 세브란스 병상에서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2001년도에 입학한 법대 양익준 학생(휠체어 사용)이 고양 지검에 검사로 임용된 그 기쁜 소식을 듣고나 떠나셨습니까?
그 학생이 면접을 앞두고 가정 형편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머물 곳이 마땅히 없어 힘들어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조용히 학내에 있는 숙소에 아버님과 함께 머물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결국 합격할 수 있게 해주신 그 조용하던 양익준 학생이 우리나라 첫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검사가 된 그 기쁜 소식을 직접 들으셨다면 얼마나 밝은 웃음을 보여 주셨을까요?

95년도 장애인특별전형 실시 이후 기존 건물에, 그것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에 점자 블럭이 깔린 최초의 건물도 바로 당신께서 일하셨던 그 곳이라는 것, 연세재단이 당신의 교수임용을 근거로 장애인고용촉진공단으로 하여금 고가의 점자 프린트를 지원받았으나, 당신이 학교를 다니는 시각장애인 학생에게 그것을 양보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연세대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장애인학생지원센터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학교 측에 전화를 하셨는지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을 하실 때마다 조용히 저를 불러, 당사자인 저희들이 도드라져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조용히 뒤에서 돕겠다고 나직이 말씀하시며 모든 공을 장애인 대학생에게 돌린 선생님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까요?

50년대 중반 시각장애인이 처음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90년대에 들어서야 선생님께서 교수가 될 수 있었으며 20년 가까이 흘러서야 시각장애인 교사가 비장애인 교사와 나란히 교단에 겨우 함께 일하기 시작한 이 서툰 시대에, 여전히 선생님의 가르침과 투쟁이 필요할진대, 선생님께서는 따뜻한 봄날을 앞두고 어찌 저희와 이별하시려 하십니까?

입춘이 왔으나 아직 그 따스함을 허락하지 않은 새벽, 이 칼바람과 이 추위를 선생님이 저희에게 주시는 장애인들의 현실과 현장에 대한 가르침으로 기억하고, 장애인 모두에게 따스한 봄날이 올 때까지 이익섭 선생님 당신을 제 마음에서 보내지 않겠습니다.
 


2010년 2월 5일 새벽, 연희동 사무실에서.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활동가 올림.

작성자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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