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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공부의 신(神)은 필요하지 않는가?

[기고]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에 대한 제언(提言)

본문

지난 2월 6일 전북고창 선운사에서 열린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TIL전환교육연구소 주관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독립생활을 위한 중등 이후의 교육과 취업옹호를 위한 한-미 국제 컨퍼런스’란 다소 긴 이름의 국제학술행사에 다녀왔다. 미국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발달장애관련 프로그램 중에서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의 Taft College TIL 프로그램이 주로 소개되면서 많은 장애인들과 부모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이 대학을 입학하여 대학원까지 진학, 취업 이후 결혼도 하여 부모로부터 독립한 역사 사례가 있고 2009년 현재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이 347명이나 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에, 한국의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들의 대학교육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고 그 대안을 찾아본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장애인대학생의 역사


기록에서 찾은 우리나라 첫 장애인 대학입학은 1957년 중앙대 철학과에 입학했던 이성대씨(시각장애, 전 국립서울맹학교 교사, 1978년 8월5일 조선일보 기사 -어떤 부부애- 참조)이다. 그러나 그 이후 군사 정권의 근대화·산업화 정책에 장애인은 대학에서조차도 별도의 신체 검사(1967년 영남대 윤철-지체장애-대입시험 신체검사 불합격 사건)을 받으면서 대학 권위 추락을 이유로 국가에 의해 제도적으로 배제 당했다.

원천 봉쇄했던 장애인 대학교육은 1988년 국립세무대학이 지체장애인(주로 소아마비)에 한해 장애인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형태로 문호를 개방한 이후 1995학년도에 들어서야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입학제도(이하 장애인특별전형)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 대학교육을 받은 세계최초 시청각중복장애인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헬렌 켈러)가 우등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지 90년 만이었다.

그러나 장애인특별전형은 일부 사립대학의 종교 가치 실현이나 특성화의 목적에 기대한 일부 사립대학에서(1995년 8개교, 113명, 2009년 90개교 561명), 비장애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몇몇 뛰어난 장애인학생, 그것도 타인의 도움이나 환경 도움 없이 대학교를 다니고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경증장애인의 이야기였다. (2009년 현재 고등교육기관에 재학 중 장애인학생 수는 3천809명, 전체 대학생의 0.1% 수준, 2009년 국가권익위원회 조사)

장애인특별전형의 원래 취지는 중증장애인학생에게 고등교육기회를 확대하는 것이었으나, 실상은 대학에 부담이 되지 않는 경증장애인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3년 서울대, 고려대 등이 중증장애인 위주로 장애인특별전형을 실시하고 교과부가 장애학생교육복지 평가를 실시하면서 점차 중증장애인학생들의 대학 진학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1995년 성공회대 신학과에 발달장애인 최초로 윤서씨(자폐성장애)가 입학하는 첫 - 기록된- 역사를 열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의 개념 정리와 세분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학에서 장애인 교육을 말하면서 늘 ‘왜(Why)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지곤 한다. 의아한 것은 장애인학생을 제외한 다른 청소년에게는 대부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도 공론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가는 대학을 왜 가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 자체가 그 대상에 대한 차별이자 배제라고 느끼는 사회 풍토 때문일 것이다.

혹시나 장애인은 대학을 졸업해봐야 사실상 취업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 있는 전문가나 정책입안자가 있다면 도리어 희망적이다. 그렇게 자신의 편견과 전문성의 상상력의 결핍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어떻게(How) 해야 대학교육을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토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떻게’를 실질 논의하려면 첫 번째, 교육 당사자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이하 특수교육법)에서는「장애인복지법」에서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가 보다 세분되어 교육 현장에서는 때에 따라 혼란을 일으켜 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 혼란은 정신장애 규정이 특수교육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정의만 보다 확대되어 당사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거나 논의할 때 정확하게 목표 대상을 정하지 못하는 예에서처럼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정신지체, 발달지체, 자폐증 등으로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일컫던 장애 유형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규칙 개정안(2007년 10월)을 통해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로 통일되긴 했지만, 그것은 「장애인복지법」에 해당되는 용어일 뿐 특수교육법을 따르는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용어와 함께, 학습 부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까지 함께 통용되고 있어 더욱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2007년 나사렛대에 공식 개설되어 2009년 신입생을 선발한 재활자립학과 역시 ‘학습 장애’란 용어를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환경에서 학업 수행 능력이 충분한 경우에도 이러한 장애 정의가 주는 낙인 효과 때문에 각 개인의 역량보다는 장애 전체로 그 학생 전체의 능력을 예단해 버리는 폐해가 발생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대학 교수(Temple Grandin, 보스턴 출신 동물학자 콜로라도 주립대학 준교수) 경우도 있고 정신장애인이 대학 교수(John Forbes Nash Jr.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現 프리스턴대학 교수)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국내에서도 비장애인 학생의 평균 수능 점수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장애인학생도 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본 기사에서는 직접 논하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정신장애와 지적·자폐성 장애를 명시적으로 구별하지 못하는 혼란 - 대학교육영역에서- 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 대부분은, 심지어 대학의 장애인학생지원센터 담당자조차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이나 정신 장애인은 아예 대학에 입학할 리가 없다고 답변했다. ((사)한국장애인인권포럼(2009), 장애인학생지원체계 모니터링 결과보고) 따라서 본문에서는 지적·자폐성 장애로 일단 통일해서 쓰기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각 장애나 지체, 뇌병변, 내부 장애, 호흡기 심장장애와 구별하기 위한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지적·자폐성 장애라는 낱말 자체가 우리에게 교육활동에 대한 선입견 선판단을 불러오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프로그램 목적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가 시급하다. 고등교육, 평생교육, 전환교육, 직업 재활, 대안교육, 복지관에서 이루어지는 교양 문화 대학까지 너무나도 다양하게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에 대한 개념이나 목적·목표가 정리되지 않고 쓰이고 있다. 그것은 오히려 봇물처럼 터지는 당사자와 학부모의 욕구와 필요의 속도를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따라가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학계와 장애인 교육 전문가들이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의 학습능력에 있어 중등 이후의 보다 높은 가능성을 억압하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지난 15년 동안의 장애인 대학교육관련 논문, 연구자료, 설문지 등을 살펴봐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대학 교육 환경에 대한 설문 문항이 국내 연구 자료는 2~3개에 불과하다.

또한 대학에서 이들 교육을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대학이 담당하는 교육 목표가, 학문을 배양하는 학문후속세대 배출과 전문직업의 전문성 고양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지역 사회를 위한 평생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 자체의 컨버전스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를 총칭하여 지적·자페성 장애인 교육에서 대학이 개입하는 모든 교육 활동을 아울러 ‘대학 교육’이라 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외부 자원과 외부 인력으로 진행되는 여러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우리가 그 방과 후 학교가 이루어지는 공간, 그 학교만의 교육활동이라고 보지 않는 상식과 통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 밖의 대학에서 행해지는 대학교육은 단순히 건물과 강의실을 한시적으로 대여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교육 당사자와 교육 개념 자체가 학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정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 얼마나 그들이 이 교육현장에서 지적·자폐성 장애학생을 도외시해 왔는지를 증거한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 목표 수립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현재 대학의 비장애인 학생들의 교육 목표도, 대학 초기의 목표대로 학자가 되거나 높은 수준의 전문직 수행을 요구하는 것은 극소수이다. 오히려 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이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만큼 대학 교육 자체가 취업 교육에 맞춰져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부족한 대학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평생교육관련 프로그램을 각 대학에서 앞 다투어 개설하고 있다. (아이폰의 출시로 스마트폰 사용이 사회 트랜드가 되고 그 변화에 교육이 필요하자, 각 대학들이 발 빠르게 스마트폰 관련 수업이나 강좌를 열고 있는 사실에서처럼.)

그렇다면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에 있어서도 현재 대학교육의 목표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체화하여 각 주제와 영역별로 독립적으로 접근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특수교육의 역량과 발전에 따라 학문 후속세대와 전문직 취업을 위한 대학교육
둘째, 사회가 창출하는 일자리에 따라 맞춤 교육을 행하는 취업과 고용을 위한 대학교육
셋째, 변화하는 사회 적응과 지위 향상을 위한 대학에서의 평생교육
넷째, 대학과 지역사회가 여러 협력 과정을 통해 고용협약을 만드는 기타 프로그램 과정

이런 구체적인 목표가 구현하는 장애인 대학교육의 목표는 비장애인학생도 그러하듯이 ‘보다 존중받는 계층으로의 이동과 지위의 상승’일 것이다. 그것은 다시 근로 소득의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적·자폐성장애인 스스로 이런 모든 진로들을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와 전문가의 욕구나 판단이 아닌 지적·자폐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와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기 결정으로 제일 널리 알려진 것은 피플퍼스트 운동으로 1960년대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후, 1973년 캐나다 정신지체장애인 세계대회에서 미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역시나 지적·자폐성장애인들이 행사 진행과 결정과정에서 뒤로 물러서 있고, 그들을 앞세우는 것은 아직까지 ‘전문가 집단’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 후 자기 지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스스로를 「피플퍼스트」라 부르기 시작, 이것이 향후 「자기권익옹호의 힘」이라는 전국 기구를 탄생하게 했다. 1994년 조사에 의하면, 15개 주가 주 자기권리 주장 연맹을 결성, 1991년 「미국 발달지체인의 자기권리주장연맹(Self-Advocates Becoming Empowered)」이 결성되기도 했다 -함께걸음 2004년 6월호 참조 인용)

우리나라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의 현주소

올해 한일 장신대학은 신학부에 사회봉사리더십 전형으로 이승준(전북제일고,19) 학생을 선발했다. 이군은 지적·자폐성 장애 1급이다. 이승준 씨는 이 성과를 인정받아 작년 12월 제2회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시상식에서 보건복지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부의 발달장애인의 대학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부끄러울 정도로 미비하다.
숭실대 박지주 학생 학습권침해 손배소 일부 승소 판결 이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실시된 지 8년만인 2003년에야 ‘대학 내 장애인 교육복지 실태평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3회에 걸쳐 평가 작업을 진행했지만 평가 항목에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평가조항은 없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학 장애학생 교육권 실태 및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09)와 한국장애인권포럼과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가 공동 개발한 장애학생지원체계 모니터링 체크리스트에서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모니터링한 것이 최초의 실질적인 조사이다.

그 외는 장애인고용공단이 박승희 교수(이화여대)에게 위탁 연구과제로 추진한 ‘대학 내 지적장애인 고용 활성화 방안’연구와 이화여대 직원으로 고용된 사례가 있다.(2008년 ~2009년) 학계에서나 장애인 단체 및 교육 단체에서 발달장애인의 대학 교육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 조사한 자료는 드물기만 하다. 간간히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학 진학소식이 감동 실화와 영웅만들기의 예로서 드러날 뿐이다.
 

1995년 성공회대 신학과 윤서씨 입학, 1999년 인천 성산효도대학원 대학교 석사과정(효학 전공)에 입학
1997년 강남대 수학과 자폐성 장애인학생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입학
2001년 나사렛대 기독교 교육학과 강민휘씨 입학, 인간재활학과 편입 2005년 졸업
2001년 중부대 생명자원학부 원예학과 이호군씨(3급) 입학.
2002년 배제대 작곡과 오유진씨(3급) 입학 2006년 졸업.
2005년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윤은호(3급) 입학
2006년 한일장신대 아시아태평양국제신학대학원 교회음악학과 송현종(3급)씨 입학
2007년 백석예술대 음악대학 임유진 입학
2007년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 컴퓨터 영상디자인과 김유진(3급) 입학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최준(자폐성 장애) 합격
2010년 한양대 장애인특별전형으로 지적·자폐성 장애인 1명 최종 입학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대학에서도 투명인간으로 따돌림 되어야 하는가?

2009학년도 현재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 347명이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이 2009년 교과부 통계를 통해 최종 확인됐다. 물론 이들 과반수는 나사렛대, 국립재활복지대학, 대구대에 재학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많은 학생이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수백 명의 해당 장애인학생이 대학 교육을 받아도 교육 당국이나 민간이 이를 지원하는 제도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반성할 일이다. 작금은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이 뛰어난 수능 성적을 얻어 대학 입학을 한다 하더라도 필요한 지원과 정당한 편의를 제공 받기는 정말 어렵다.

2009년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지원 규칙이나 내규를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학교는 2~3곳에 불과했고, 이들 장애인학생을 최소한이라도 이해하고 배려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전문적인 실무자가 있는 장애인학생지원센터는 전체 대학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앞에서 언급된 이화여대 역시 장애인학생지원센터 실무자와 학교 최고 책임자 역시 지적·자폐성 장애인학생도 뛰어난 학력을 성취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학교에 고용되어 있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학교 구성원의 몰이해로 그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들어 각 대학에 지적·자폐성 장애인 학생 수가 대폭 들어난 것의 계기는 당사자와 부모들의 욕구 증대가 가장 큰 이유지만, 보다 중요한 본질은 학령기 인구 감소로 인한 수도권을 제외한 대학들의 정원 미달에 기인한다. 욕구가 큰 수요층과 정원을 채워야 하는 대학 당국의 이해관계가 사실상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대학교육을 견인하는 정치 경제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 (이번에 소개된 미국의 경우에도 방학 때 공실이 된 기숙사 문제가 그 계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외국의 경우에는 기존 대학이 인프라와 교육 자원들을 제공하고 부모와 지역 사회가 재원을 조달하는 모델로 발전해 왔고, 한국은 대학 자체의 폐쇄성과 사회공공성 부족 등으로 인해 이해 당사자들이 대학을 변화시키기보다 지역 사회에서 비인가 대학 형식으로 발전했다. (예:호산나 대학, 산돌 대학, 노틀담복지관의 노틀담대학, 한우리정보문화센터 문화대학)

대학과의 협동 등으로 인해 대학 사회에 지적장애인 학생들에게 취업 훈련을 시키고 이들을 다시 대학 사회가 흡수하는 이화여대의 모델은 기실 90년대 중후반부터 복지관 그룹홈 운동 단체에서부터 꾸준히 제기했으나 대학 노조의 반대와 외부 용역화로 인해 무산됐던 바 있다. (이화여대는 2009년 발달장애인 지역사회생활 아카데미를 평생교육원 안에 개설했다.)

이미 300명이 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대학을 다니고 있음에도 이들의 학습권과 교육환경에 대한 문제제기가 별로 없는 것이 이들이 모두 우수한 무장애 교육 환경에서 적절한 인적 지원을 받으면서 대학을 잘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학 당국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학생증을 발급 받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교과부에서도 몰라라 하고 대학에서도 모른 척하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이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에 대한 국내 연구와 기획취재가 절실하다


아직까지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대학 교육 논의는 민감한 주제다. 그러나 당사자, 학부모, 대학 모두 욕구가 있고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교육 정책에서 이미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경험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일제로부터 소록도 생체실험과 불임 시술 등과 같은 것으로 시작하여 대규모 집단 패쇄 시설 수용으로 넘어 왔고, 이후 복지관과 그룹홈 같은 외국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했으며 「장애인차별금법」이나 「특수교육법」이 마련됨으로써 대학교육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시행착오는 과거를 완전히 단절하여 떨쳐 버리지 못하고 21세기인 지금도 지적·자폐성 장애인 개개인에게 계속되어, 많은 경우 사회 참여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시설로 입소하거나 집안에만 머물거나 동반 자살을 하는 아픔으로 공유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아픔 때문에 개인의 인격과 인권, 그리고 단 0.001%의 가능성을 신뢰하여 지적·자폐성 교육이 행해지는 게 아니라, 사회부담과 가족의 고통을 덜기 위해, 그리고 관료적인 교육 시스템의 결과론에만 빠져 장애인 당사자를 온갖 프로그램에만 밀어 넣는다면, 그것은 사회 통합이 아니라,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강요된 사회 덤핑 (Social Dumping)일 뿐이다.

최소한 전문가들과 현장 교사들, 그리고 부모들이 그들의 장애를 ‘능력의 한계’로 보는 기본 철학과 관점이 ‘다양성’으로 보는 패러다임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장애인 당사자가 어떻게 학업 성취의 동기를 발동할 수 있겠는가?

1980년대에 우리 사회와 교육 전문가들은 소아마비로 인한 경증의 지체장애인만을 겨우 교육할 수 있었고, 90년대에 들어서야 일반교육에서 스스로 몇몇 살아남은 중증장애인을 교육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것은 대학과 교육 전문가들의 자질과 능력 부족 때문이지,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장애 때문이 아니다. 대학과 교육 전문가들이 장애인 당사자 학생의 능력을 예단하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무능력을 규정하는 이율배반이다.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부족한 능력을 키우고 가르쳐서 능력을 만드는 것 아니던가?

모든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에게 기적을 일으켜 석박사를 배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그들을 ‘과거에는 정책이 부족했으니 외국의 잘나가는 정책을 도입하여 일단 시행하고 도전해보자’는 전문가들의 판단에, 보다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다. 외국의 정책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그들의 학생은 한국의 학생들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한번 천착된 정책은 고정된 이미지와 스티그마를 붙이고 나중에 바꾸기도 어려워진다는 것을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위헌 논쟁에서 배우지 않았는가?

장애인특별전형 역시 비장애인학생과 동등하게 경쟁기반 투자없이 방치함으로써 사립대학의 재원 충원이나 장애를 대학 진학의 도구로만 이용하게 하는 반작용을 경우도 생기고 있다.

정책의 성공은 미담이고 사례가 될 뿐이지만, 정책의 실패는 장애인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그가 속한 모든 장애인 그룹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도입된 정책과 그것을 관통하는 철학을 함께 검토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 정책 서비스가 아무리 우리나라 장애인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한다 한들 주체적인 삶이 영위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독립적인 삶을 만들고 주고 싶어서 정책을 도입하는 것에, 정작 그들이 직접 발언하는 것을 만들고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 원래의 철학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것이다. 각종 워크숍에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여전히 외국 정책의 거친 전문가의 실험장일 뿐이요, 학생들은 그 프로그램 의 실험 대상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아픔을 되풀이할 것이다. 장애인학생의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좋은 정책에 성공한 것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참되게 수입되어 빛을 발하려면 실패의 경험과 어두운 면과 한국의 경험을 비교할 수 있는 것도 함께 들어와야 하며 그것과 결부됐던 철학과 역사의 경험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뉴욕에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 중 약 15%만이 제대로 된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는 실태조사 밝혀졌다. 또한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학생지도를 위해 전기충격기를 사용하는 사실 역시 한국의 어떤 국제 교류에서도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토양과 철학과 역사를 차분히 연구 조사하고 외국의 우수한 정책들의 성공보다 시행착오에 더욱 집중하고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열린 국제 컨퍼런스는 장애인학생, 학부모에게는 분명 흥분되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설계하고 시행하기 위해 사전에 연구되어야 할 한국의 공개 논의는 2006년 9월 나경원 의원실과 국회연구단체 ‘장애아이 We Can’에서 진행한 「정신지체인의 고등교육」워크샵이 유일했다는 사실도 각인해야 한다.

지난달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공부의 신’의 특별반 학생들의 모습이 특수학급과 특수학교 학생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꼴찌 학생들을 일류대학으로 보내는 마이더스 손을 가진 선생님들이 나타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것은 일개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지능이 떨어지고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강남의 사교육 시장과 인기는 일어 날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혹시나 기존의 장애인 교육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대학교육이 능력이 부족해서 불가능해라는 하나의 규정으로만 우리의 인식이 세팅 됐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드라마에서 그 반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교사의, 학부모의 결정도 아닌 학생 스스로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또한 그 아이의 결정을 끝까지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지적·자폐성 장애인 대학교육에서도 꼭 유념되길 기대한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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