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묻지 마세요. 운전이 가능하냐고!? > 대학생 기자단


제발 묻지 마세요. 운전이 가능하냐고!?

어느 목발뚜박이의 생애 주기별(?) 이동권 투쟁기 1

본문

폭풍바다를 바자니는 모비딕을 정복하듯 운전면허를 따다

모비딕(Moby Dick)은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이자, 그 소설에 나오는 난폭하고 거대한 흰 향유고래의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백경(白鯨)으로 알려졌다.

고래잡이 사냥에서 모비딕에게 한 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의 집요한 복수를 홀로 살아남은 이스마엘이란 청년의 회고형식으로 쓴 영문학의 수작이다. 그리고 운전면허를 딴지 한 달 만에 마련한 생애 처음 차에 내가 붙여준 애칭이기도 하다.

전국에 저상버스가 돌아다닐 때까지 절대로 자가 운전자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내가 3개월 만에 운전면허를 획득하고 아직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차를 직접 몰고 인천 국제공항 인천대교를 내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온난화로 변덕스럽게 몰아치는 겨울 추위를 스쿠터를 타고 헤쳐 나갈 ‘깡’과 체력이 고갈되기도 했고, 이래저래 이동권을 핑계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하염없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지치기도 했지만, 어느 날 지나가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툭 던진 의심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몸으로 운전할 수 있겠어요? 힘들 것 같은데......’

그동안 학벌과 같잖은 글재주로 방어막으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제도적 차별보다 더 무서운 일상의 차별과 오랜만에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과거Ⅰ, 목발 뚜벅이의 버스 타기 번지 점프를 하다

석 달 전만 해도 난 장롱운전면허도 없는 순수한 뚜벅이(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9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였다. 아니, 목발 짚은 뚜벅이였다.

대학 들어오기 전에는 고향인 부산에서 20년 넘게 버스를 거의 타본 적이 없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서’ 타본 적은 딱 두 번밖에 없다. 버스 타는 것은 안전장치 없는 번지점프 하기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상버스가 없던 시절, 버스 회사가 사기업이었던 시절에는 물론 지금처럼 훌륭하게 버스의 착지점을 포착하기까지, 약간은 나를 의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보고 씨익 웃으며 버스 카드를 긋고, 제2베이스캠프인, 내리는 문 바로 앞의 좌석까지 무사히 도착하기까지는, 모르긴 몰라도 올림픽 대표선수들에 버금가는 시행착오와 피나는 훈련을 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대학 들어와서 완벽하게 혼자서 버스를 타는 데 2년이 걸렸다.

먼저 정거장에서 정확하게 버스의 착지점을 알아내거나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욕먹지 않고 쫓아가 세우기까지 1년, 넘어지지 않고 버스카드를 긋고 내리기 쉬운 자리를 확보하는 데 6개월. 그리고 안전하게 내리는 데 6개월, 합이 2년이다.

그렇게 2년 걸린 버스타기는 2000년 이후 장애인 버스타기란 깃발을 드높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정점에 올랐으나 이명박 前서울시장의 밀어 붙이기 ‘쿠리치바- 는 브라질 파라나 주의 주도(州都)이다. 보행자를 위한 세계적 도시이다. - 따라하기’ 에 의해 바뀐 버스 노선과 환승제도 때문에 그나마 생긴 저상버스와 부드러운 출발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버스로 번지점프하기는 막을 내렸다.

그나마 어렵게 기존 버스타기에 숙달되어 있던 지적 자폐성 장애인들이 더더욱 복잡한 버스타기에 힘들어 했듯, 목발을 짚으며 버스를 환승하고 교통카드를 두 번씩이나 찍는 것은 번지점프에 끈마저 없어진 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Ⅱ, 달려라, 스쿠터 “내 앞에 길은 없다. 길은 내 뒤에 생긴다.”

한창,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중심으로 전동휠체어보급 사업이 진행될 무렵 나도 바퀴가 3개 달린 빨간색 국산 스쿠터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에 굴러 가는 모든 동(動)-테는 굴러가는 이유가 있고 길들이기가 있다지만 3개월의 서울 시내 운영에서 ‘타기’와 ‘몰기’는 ‘돌진’이었다.

인도(人道)는 요철 때문에 온몸이 부서질 지경이요, 보행로의 폭이 너무 좁아 지나가던 사람을 치는 교통사고도 다반사이며, 그나마 있던 길도 턱 낮추기 등이 되어 있지 않아 절벽이요, 낭떠러지였다.

할 수 없이 차도로 가자니 도로의 무법자 버스들 사이에 끼여 보험료도 못 받고 도로에서 비명횡사할 것 같고, 택시기사 아저씨들에게는 뭘 그리 오래 살 운명을 타고 났는지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으면서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 역주행 하는 엽기 행각까지 벌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동 스쿠터를 참 열심히 탔다. 억척스레 탔다. 도로 턱에서 떨어지면서도, 도로 갓길에서 택배 오토바이와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해도, 비록 스쿠터를 타던 첫날 지하철 리프트가 중간에 멈춰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찔한 조난의 경험도 있었지만, 그래도 스쿠터 타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내 스쿠터는 쌀가마니를 들 수 있게 하였고 사랑하는 조카를 태울 수 있어 능력 있는 삼촌으로 인정받게 했기 때문이다. 비록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굴러가면 수없이 날아오는 시선의 고통과 권력을 느껴야 했지만, 스스로 독립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환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환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장애인콜택시와 부실한 저상버스, 그나마 광역버스는 아예 접근도 못하는 현실 앞에 나의 독립은 장보기에 머물러야 했다.

현재, 두려운 건 운전이 아니라, ‘차별’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인권활동가이지만, 운전학원에서 문전박대 당하고 싸우기 싫어서 마침 취업 준비로 면허증이 필요했던 후배 녀석과 함께 등록을 했다.

다른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거나 대학입학을 거부당하는 사건에서는 양보 없이 잘도 투쟁했었지만, 난 여전히 동네 목욕탕을 가거나 미용실을 가거나 헬스클럽을 갈라치면, 활동가로서가 아니라 소비자로서 동네 주민으로서 위아래 훑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불쌍한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소비자’가 되고 싶어 후배 손님까지 모시고 갔건만 첫 등록 앞에서 난 여지없이 청문회를 당해야 했다.

“그 몸으로 운전 할 수 있겠어요?”
(‘학과시험 볼 때 그 말 많은 장애인운전능력검사 통과했거든요! 자기가 운전 못할 걸 알면서도 운전 배우는 사람은 없다고요!!’)

“ 우리 학원에는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없는데….”
(‘모든 허가된 자동차운전 학원에 장애인보조도구를 달 수 있거나 단 차량을 한 대 이상 구비하지 않으시면 불법이거든요’, ‘확 그냥 고발해서 영업정지 시켜 버릴까보다’)
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으나 그 순간 난, 무조건 괜찮다고 대답하는, 순응적이고 착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운전학원에 편의시설 점검 나온 것도 아니고 모니터링 나오는 것도 아니다, 라며 스스로 자조하면서 말이다.

처음 연습용 차량을 탔을 때의 강사님의 그 걱정스러움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눈빛을 난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러고 나서 강사님은 “기어 움직여 보라.”, “핸들 돌려보라.”, “페달 밟아 봐라.”하며 운전연습 차량으로 의사선생님이 왕진 진찰을 나온 것 마냥 질문을 해댔다.

그리고 그 질문과 의심은 기능시험을 합격하고도, 도로주행에 합격하고 운전면허증을 받아 다시 시내 연수를 받을 때까지도 여전히 반복되었다. 그리고 강사님끼리 그렇게 합격한 나를 서로 신기해했다.

아무런 보조기기 없이 오토 차량을 양발로 운전하는 뇌병변장애인을. (심지어 여기까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뇌병변장애인이 아무런 보조기기 없이 운전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가?)

그럼 다음 호에도 내 원고를 기다려 주기 바란다. 차를 인수한지 3일 만에 연인을 인천에서부터 출퇴근시켜 주는 뇌병변장애인 운전자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 광폭한 대한민국의 도로를 질주하는 모비딕을 정복해 가는 외발이 선장처럼.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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