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성공이란 것은 > 대학생 기자단


아름다운 성공이란 것은

[소중한 삶을 사는 벗들을 위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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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 수 있어 즐거웠단다. 여고동창생들의 수다는 수다 중의 제일인 것 같아. 이렇게 집에 돌아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으니 말이야. 남의 일이 아닌 조기퇴직 이야기, 여성파워를 자랑해가며 자신의 일을 하는 이야기, 아이 유학 보내는 이야기, 보는 듯 하지만 결국 자랑삼아 하는 남편이야기, 이혼한 이야기, 이왕 솔로로 사는 거 골드미스로 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 등등 크고 작은 일들을 늘어놓는 수다 가운데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모임에 나온 네가 나에게 했던 말 기억하니? 10여 년 전 일이지. 교육공무원으로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너는 이렇게 말했었어. “명숙이 넌 그만하면 성공한 거 아냐? 특별히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장애도 있잖아. 그런 환경에서 작가가 되고 직장도 있으니 그만하면 된 거지. 성공한 거 맞잖아.”

나는 그때 네가 그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되어 버렸어. “그래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아직은 먼 거 같아. 나의 장애는 나의 핸디캡으로 나를 어렵게 했지만 삶의 지렛대가 되기도 했어.” 이런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 무척이나 화가 나기도 했지.

결국 네가 바라본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너의 능력은 이만큼이야.’라고 선을 긋고 나를 대한 거니까. 네가 지금은 장애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도 최명숙이란 이름 앞에 장애란 수식어를 붙여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해. 하지만 편견이란 것은 너의 생각이지 나의 것은 아니니, 지금도 그렇다고 해도 탓할 생각은 없어. 나에게 너는 친구일 뿐이야. 너도 보다시피 평범하게 사는 지금의 나, 그저 평범해. 10여 년 전 네 말대로 나는 내 삶에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정년을 못 마치고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때 기분이 참 이상했어.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나 싶어서 말이야. 경제가 침체되지 않았다면 이런 걱정들도 조금은 늦게 했겠지. 나 역시 올해로 만 이십년을 다닌 직장에서 앞으로 정년까지 몇 년 남았나 따져 보게도 되었지. 앞으로 정년까지 10년 남짓 남았어.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퇴임을 한다면 무척 기쁘고 감사한 일이겠지. 참으로 값진 안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뇌성마비 의사가 정년퇴임한 소식을 들었어.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국내 처음으로 의사가 돼서 광주 북구보건소에 근무해온 김세현 소장의 일이지.

2003년부터 광주 북구 주민 46만여 명의 공중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김세현 소장은 국내 첫 장애인 보건소장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어. 김세현 소장은 1971년 전남대 의대에 입학한 뒤 휴학과 복학을 거듭해 10년 만에 졸업장하고 난 후 종합병원 인턴과정에 지원했지만 지원자가 모자란 상황에서도 “불편한 몸으로 힘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거절당했다고 해.

그는 1981년 어렵게 광주 동구보건소에서 진료를 시작해 1년 뒤 북구보건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보건소에서 2, 3년만 일하다 병원 개업을 하려 했던 김 소장이 저소득층을 주로 상대하는 보건소 의사로 눌러 앉게 된 계기가 있었대.

김 소장이 진료하던 한 할머니에게 뛰어난 의사가 있는 다른 병원을 소개해 드렸는데, 이 할머니는 며칠 뒤 찾아와 “병원 간호사가 약 봉지를 휙 던지며 ‘다시 오지 마세요.’라고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는 거야. 그 때만 해도 병원들은 치료비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기피했던 시정이었으니까.

김 소장은 이들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병원에서 8년 만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땄다고 해. 그는 노인들에게 약을 주기보다 운동이나 음식을 고려한 처방을 해 인기를 얻기도 했고 하루 20∼30명에 불과하던 환자가 200명을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해.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화병을 많이 앓지만 잘 드러내지 않는다.”며 “오랫동안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라고 하면서 진료 에피소드가 참 많다고 전했어. 김 소장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나의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을 열어 준 환자들이 오히려 고맙고 정년 후에도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희망을 남겼다고 해. 공직생활을 마치면서 광주 북구 장학회에 장학금 1000만 원을 쾌척했다고 하니 고개가 숙여지는 일이야.

쾌척한 장학금은 최근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당한 교통사고 합의금에 김 소장이 사재를 보태 마련한 것이라서 더욱 숙연해지는 것 같아. 나는 김세현 소장이 뇌성마비 때문에 의사를 할 수 없다는 사회 인식에 과감히 도전을 했기 때문에 이런 멋진 의사 생활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보았어. 불가능하다는 일에 한 도전이기에 맺어진 결실이 참 아름다워 보이고 귀하다 여겨지지.

김 소장은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추천으로 2004년 장애인의 날에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기도 했어. 김 소장을 만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의 공저조서를 쓰던 날의 기분으로 김 소장에서 말해주려고 해. “많은 장애인들이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도 베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라고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그리고 2004년 당시 의대에 다니던 큰 아들과 고3이던 작은 아들은 잘 컸는지 말이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하면 동네에서 의원을 경영하며 고교 시절 꿈이던 소설을 쓰고 싶다던 꿈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뇌성마비의사가 쓴 소설을 빨리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나 역시 그렇게 10여 년 후에 아름다운 정년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에게 아름다운 성공을 했다고 축하받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성자최명숙 (시인, 뇌성마비복지회 기획홍보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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