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남은 자유가 아닌, 모든 시민.정치적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라 > 지난 칼럼


껍데기만 남은 자유가 아닌, 모든 시민.정치적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라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침해감시단 성명서]

본문

G20규탄 국제민중공동행동의 날인 11일, 경찰은 G20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집회와 행진이 정상들의 만찬장소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탓인지 도심 행진을 전면적으로 금지해 온 기조에서 한발짝 물러나 서울역에서 남영역까지의 행진은 허용했지만, 그나마도 경찰의 자의적인 집회 방해와 비밀 감시로 얼룩진 것이었다.

이날 경찰은 집회와 행진참가자들이 정상들의 만찬장소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였으며,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영역까지만 행진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집회/시위가 그 대상과 떨어진 곳에서만 허용된다면, 이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사실상 그 자유의 껍데기만 남기는 것이다.

표현과 집회/시위의 자유란 권력자를 향해 시민과 민중의 정치적 의사와 의지를 표현하고 시위할 자유이지, 권력자들이 듣거나 말거나 외따로 떨어져 떠들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권력을 향한 항의와 반대의 목소리를 사실상 차단하고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건 간에 그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스럽게 만든다.

경찰은 다만 서울역에서 남영역까지의 행진은 허용했는데, 도심 행진을 거의 금지하다시피 해온 경찰의 기조에 비추어보면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은 불과 며칠 전의 노동자 대회에서도 행진을 금지하고 봉쇄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집회/시위에 대한 검열과 사실상 허가제를 운영해온 한국 경찰의 실상을 날 것 그대로 전세계에 보여주기엔 경찰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대신 경찰은 표면적으로는 집회와 행진을 보장하는 것처럼 모양새를 만들고 외신 기자들에게 최대한 협조하는 한편, 집회 참가자들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감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나왔다는 100여명의 사복 경찰들은 “보도지원”이라는 완장을 차고 집회 현장을 들락거리며 외신 기자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회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에 대해 소속 언론사의 논조에 따라 편파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때론 적대시하고 폭행까지 했던 경찰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보도지원“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던 사복 경찰들은 행진이 시작되자 많은 수가 완장을 떼고 행진 대열에 밀착하거나 행진 대열 내부로 섞여 들었다. 이는 집회/시위는 경찰 등 국가권력의 감시로부터 자유롭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실제로 오후 5시 30분 경 우리들은 사복 경찰로 추정되는 자가 행진 대열 속에서 행진 참가자들의 얼굴을 몰래 촬영하다 발각되어 행진 참가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발견하고 조사하였다. 이 자는 소속을 밝히라는 요구에 불응하였으나 ‘오늘은 시위 참가자들이 불법 행위를 한 것이 없어 찍어도 괜찮다’는 등의 발언으로 사실상 경찰임을 시인하였으며, 경찰 기동복을 착용하였으나 역시 소속을 밝히기를 거부한 또다른 경찰관이 나타나 이 사람을 대열 밖으로 빼내려 시도한 것으로 보아, 우리는 이 자가 행진 참가자들을 비밀리에 감시하기 위해 잠입한 경찰 또는 관련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경찰이 사복을 입고 집회 참가자들을 비밀리에 감시하고 사찰하는 것은 현행법을 위반한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인권침해이다.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 제19조 1항은 “경찰관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에게 알리고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장소에 정복(正服)을 입고 출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사복 경찰이 몰래 집회나 행진 대열 내부로 잠입하는 것은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이다. 더불어 집시법 제3조 1항은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22조에서 “군인·검사 또는 경찰관이 제3조제1항 또는 제2항을 위반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집회/시위는 단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 물리적인 봉쇄로부터 자유로워야할 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의 비밀스런 감시로부터도 보호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가 권력의 감시는 그 자체로 시민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집회/시위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렇게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을 비밀리에 감시하는 것은 물론, 사복 경찰들이 현장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행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경찰은 그나마 남영역까지의 행진조차 간섭하고 방해했다. 4시 30분 경 서울역에서 행진이 시작되자 경찰은 당시 집회 주최 측이 준비한 “상여”가 불법시위용품이라며 신고된 행진을 자의적으로 봉쇄하였다. 그러나 집회나 시위의 방법은 평화롭게 진행되는 한 집회 주최 측이나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이며 경찰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남영역 인근에서 진행된 마무리 집회에서도 경찰은 집회 주최 측이 집회 종료를 선언하기도 전에 상징물에 대한 소각을 이유로 무장한 경찰 병력이 집회 대열 내부로 무단 난입하였다. 그러나 상징물 소각에 대해 경찰이 해야 하는 의무는 이것이 예상치 않은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최 측과 협의하여 안전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상징물 소각이라는 표현 방식에 대한 일반적 금지는 이러한 안전조치 마련을 방해할 뿐더러,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다.

마지막으로 경찰과 한나라당이 G20 정상회의를 빌미로 끊임없이 민중들의 표현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켜온 점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경찰과 한나라당은 정상회의를 안전하게 개최하기 위해서는 야간집회를 금지해야 하며, 시위 진압을 위해 음향대포와 다목적유탄발사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지금은 위헌적인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특별법을 통해 경호구역 내 모든 집회/시위는 물론 1인 시위까지 금지하고, G20 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물리력과 폭력으로 항의의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러한 강제가 강할수록 그만큼 정상회담의 대표성과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표현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비롯하여 민중들의 모든 시민/정치적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침해감시단
2010년 11월 12일
작성자함께걸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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