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 안에 장애인 복지가 있다 > 대학생 기자단


보편적 복지 안에 장애인 복지가 있다

[편집장 칼럼]

본문

  혹시나 기대했던 장애인 활동지원법 개정이 사실상 무위로 끝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든 불길한 예감은 이제 장애인 복지가 한계 상황에 부딪혔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관련 열 번째 법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 활동지원법은, 그러나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 된, 명백하게 장애인들 의사에 반해서 제정된 법이었다. 이 법은 과도한 자부담 항목 등 독소 조항이 수두룩한데도, 장애인들의 피 끓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어느 조항 하나 개정되지 않았다.

  현재 중증장애인들을 공포에 짓눌리게 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장애등급 재심사도 완화될 기미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껌값 장애연금으로 살 수 없다는 빈곤장애인들의 절규도 돌아오지 않는 깊은 산 속 메아리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장애인 복지가 덫과 암초에 부딪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장애인 복지에 무관심한 정부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여기 다른 시각도 있다.

  지난 2월 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죽었을 때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은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라는 기사에서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했다.

  ‘만약에 가장 어려운 사람들만이 아동수당, 무상의료 또는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회집단들은 그러한 혜택이 가능한 한 값싸게 지급되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온갖 이유를 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급여의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급여는 자신들은 받지 못하는 것이고, 또 여기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고 해도 자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정책의 근본이념은 간단하다. 복지개혁을 통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본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들을 위한 재정 확보에 동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잔여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인용된 이런 구절들은 언뜻 일별해도 장애인 복지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장애인 복지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것은 모두의 복지가 아닌 장애인들만의 복지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회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대로 받든 말든, 빈곤장애인들이 껌값 연금을 받든 말든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장애인들이 그나마 간신히 받고 있는 복지 혜택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이 구절들은 냉정하게 적시하고 있다. 

  결국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들만의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는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림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만이 외딴 섬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장애인들이 장애인들만의 복지가 아닌, 기본소득이 됐건 기초연금이 됐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복지를 우선해서 강하게 요구하고 거리에 나서면 양상은 어떻게 바뀔까, 장애인들이 앞장서서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의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장애인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보편적 복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장애인들만의 다른 복지 욕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명백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장애인들만의 복지에 모든 걸 걸고, 부르짖어서는 제대로 된 장애인 복지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시대 흐름은 보편적 복지가 대세이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의 가능 불가능 여부는 정치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 장애인들이 장애인 복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정치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립이 아니라 함께 걸으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것, 그 바탕에서 장애인 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 그 길만이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장애인 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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