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왜 설명을 요구하는가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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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마다 열리는 WCA 월드챔피언십(스피드 큐브 세계대회)에 참가한 펠릭스 젬덱스와 맥스 박의 활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스피드 큐버들의 축제를 담은 넷플릭스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 6년 전 이 다큐멘터리의 예고편을 보고 오픈 날만을 기다렸던 데에는 큐브에 대한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TV에서 알록달록한 정육면체의 큐브를 눈 깜짝 할 사이에 색깔 별로 맞춰버리는 마치 마술사의 손놀림 같은 소년의 손놀림을 봤다. 그날 이후로 큐브가 갖고 싶어 용돈을 모으고 모아 드디어 엄마와 큐브를 사러 장난감 상점에 갔던 날의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마침내 내 손 안에 들어온 큐브. 이리 돌려도 보고 저리 돌려도 보며 맞추려 세 달을 애 써 봤지만, 끝내 단 한 번도 맞추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다. 그 때 알았다. 무조건 시간과 노력만으로는 저런 경지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도 육면체 중에 한 면 밖에는 맞추지 못하는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큐브 전면을 맞춰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경이로움이 있고, 재능의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두 큐버의 관계를 기록하다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의 주인공 중 펠릭스는 수년간 월드챔피언십 대회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해 온 스피드 큐브계의 전설이다. 수많은 세계기록과 우승으로 사실상 한 시대의 상징인 그. 그러나 영원한 챔피언은 없고 시대는 저물며 도전은 이어지는 법. 이 전설을 위협하는 큐버가 등장한다. 한국계 미국인 맥스 박. 맥스는 등장과 함께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단숨에 펠릭스와 나란히 이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큐버가 된다. 다큐멘터리는 큐브계의 전설 펠릭스 젬덱스와 신예 맥스 박을 통해 큐브의 세계를 줌인한다.
경쟁이나 라이벌 관계를 담을 때 보통은 둘 사이에 흐르는 신경전과 긴장감을 카메라가 담으며, 라이벌 서사에 집중하는데, 이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경기장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하며 응원하는 모습을 담는다. 맥스가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펠릭스는 박수를 보내며 진심으로 기뻐한다. 또 매번 메일을 보내 챔피언임을 인정해주고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맥스도 펠릭스가 여전히 놀라운 기록을 낼 때마다 존경심과 축하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카메라는 이 둘 사이에 흐르는 동료애, 우정,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과 연대의 교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카메라가 집중한 이 둘의 시선, 표정, 행동 하나하나로 만들어진 장면들 중에서 펠릭스가 모든 큐브 종목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내고나서 훈련시간도 집중력도 부족했음을 자책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맥스가, 엄마에게 “젠장 펠릭스는 3위 안에 못 들었어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른 펠릭스가 역시 져서 속상해하는 맥스 곁으로 가 “3위 안에 들지 못해서 우리는 더 강해질 거야. 그러니 괜찮아.”라며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 집중했기에, 그냥 흘려버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맥스 나름의 표현과 소통 방식을 인정하고 그에게 집중했기에 담길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고, 하나의 시퀀스로 이어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이 다큐멘터리가 무엇의 이야기인지가 한 번에 관통된 명장면이 된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기록의 예술이다.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은 스피드 큐브 천재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큐브를 매개로 서로에게 성장 동력이 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라 예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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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큐버(Cuber)로서만 바라봤다면
영상의 속성이 그렇듯,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움도 존재했다. 첫 인터뷰에서부터 맥스의 이야기는 부모가 대신한다. 맥스가 어릴 때 또래 아이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언제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는지, 그때 부모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면서, 부모가 그의 장애를 언제, 어떻게 받아들였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큐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이야기한다. 자연스럽게 인터뷰의 물음과 답변은 맥스가 아니라 부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또 다른 챔피언 펠릭스의 인터뷰는 전혀 다른 결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 큐브를 맞췄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큐브의 어떤 매력이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끌었는지를 말한다. 그러면서 큐브와 경쟁자 맥스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한다. 자연스레 이 인터뷰의 질문과 대답의 주체는 그 자신이다. 결국 한 챔피언의 이야기는 부모의 생각과 말로 전해지는 ‘장애 이야기’로, 또 다른 챔피언의 이야기는 자신의 생각과 말로 전해지는 ‘큐브와 경쟁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큐브에 입문한 배경도, 살아온 과정도, 환경과 상황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다. 인터뷰의 질문과 내용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나. 첫 인터뷰에서 한 사람은 자신의 자폐스펙트럼 장애 이야기로, 또 한 사람은 큐브에 매료된 큐버의 이야기로 흐르는 순간 고개가 저어졌다. 자폐스펙트럼 장애 중 일부인 천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다른 의미에서, 자칫 맥스를, 그리고 맥스와 펠릭스의 관계를 기존 인식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너무도 익숙한 시선과 화법이기에, 누군가는 “당연한 것 아니야, 무엇이 문제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시선과 화법의 전제에는, 자신을 끊임없이 설명하며 이해를 구해야 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과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평범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불평등이 자리한다.
그 후로도 맥스의 인터뷰는 그의 부모에 의해서 진행됐다. 맥스라면 과연 저렇게까지 이야기했을까 싶을 정도로 장애에, 극복서사에 맞춘 너무나도 익숙한 시선과 언어로 말이다. 맥스의 부모는 큐브가 맥스와 가족 사이의 소통을 돕고, 맥스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매개였다고 말한다. WCA 세계 챔피언십 참가 경험과 경기 현장 역시 맥스의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만난 큐버들, 그중에서도 펠릭스를 동료 큐버나 경쟁자라기보다, 맥스를 세상과 연결해 준 고마운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을 알지만, 순간순간 나는 만든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까지 맥스의 ‘다름’을, ‘장애’를 구구절절 설명하도록 유도하고 담으세요? 라고. 그것도 맥스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부모의 언어로 대변된 이야기를 말이다. 당신들이 펠릭스를 바라보듯, 맥스를 그저 한 명의 큐버로만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큐브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맥스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맥스보다 우선했다면,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각자의 다른 소통방식을 자연스럽게 인정했더라면 말이다. 이런 설명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 사람의 이야기가 타인의 언어에 의해 대변돼 왜곡될 여지를 지금보다는 줄이는 구성과 연출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큐버로서 맥스가 가진 큐브에 대한 애정과 재능이,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호전시키는 매개로 해석되거나, 펠릭스와의 관계가 누군가의 특별함을 이해해주는 미담으로 기울 여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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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요즘처럼 극장을 찾는 발길이 줄어든 시대에 천만을 넘어 이천만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왕과 사는 남자>다.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단종’을, 그리고 단종을 연기한 박지훈 배우의 메소드연기를 꼽는다. 영화의 장면들 중 유배 길 가마 안에서 단종이 금부도사의 손끝을 잡는 장면과 강을 건너다 돌에 걸려 뗏목이 반으로 부서지며 단종이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박지훈 배우가 단종 그자체여서 유독 마음을 오래 붙들렸다. 어떤 행동과 말보다 그저 붙잡은 손, 고요히 서 있는 실루엣에 실린 단종의 비참한 현실과 심연이 와 닿았다. 살면서 어느 순간, 어떤 감정, 어떤 이의 ‘다름’은 이렇게 그저 알아지기도 하며, 수많은 말들로 들추고 설명되고 덧붙여질수록, 오히려 그 본질이 흐려지고 왜곡되기도 하지 않던가?
P.S. 종종 장애를 어느 선까지 보여주고 말해야 할지를 묻는 미디어 제작 종사자들에게, 나는 그 사람이 되어보라(메소드 연기 Method acting 하듯)고 말한다. 그 사람이 되어 보면 그저 하던 대로 자폐스펙트럼 장애나 언어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족이나 주변인을 먼저 섭외하려는 손이 멈춰질 것이고, 섭외한 이유와 하고 싶은 이야기(<스피드 큐브의 천재들> 시놉시스나 예고편에 맥스의 장애 언급이 없다. 왜 그랬나)를 다시 생각해볼 것이다. 그 사람이 되어 보면 사람이 궁금해지고 교과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가 가진 장애는 그를 이루는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되뇌게 될 것이라 덧붙인다. 굳이 장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보는 이들은 안다. 그 강박을 버리라는 당부와 함께 (사람에 집중해 펠릭스와 맥스의 관계를 관통시킨 장면들처럼).
작성자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활동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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