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하 표현’ 사회적 기준 부재… 언론·학계·단체 간 간극 확인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비하 표현에 대한 인식도 차이에 대한 분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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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는 최근 발간한 특별연구리포트 「장애비하 표현에 대한 인식도 차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언론인·장애인단체 종사자·학계 연구자 등 집단 간 ‘장애비하 표현’에 대한 인식 차이를 조사·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장애 관련 표현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한 자료로, 언론 현장과 장애인권 담론 간의 인식 격차를 수치와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조사는 언론인, 장애인단체 종사자, 학계 연구자 등 11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응답자의 11%가 언론인, 46%가 장애인, 54%가 비장애인이었으며, 전체의 74%는 장애인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영국의 폴 헌트(Hunt, 1966)가 제시한 미디어의 장애차별적 묘사 유형을 토대로 △무기력·절망 서사 △초인·감동 서사 △극복·재활 중심 서사 △가족의 희생·업보 서사 △발달장애인 유아화 표현 △장애인 아닌 보장구 중심 표현 △의학적 용어 사용 △선정적 묘사 △직접적 비하 표현 △부정적 비유 △기형아 등 부적절 용어 등 11개 범주로 나누어 각 유형에 대한 인식도를 4점 척도로 조사했다.
"표현 맥락에 따른 판단 차이 뚜렷"
연구 결과, 미디어의 장애 관련 표현을 둘러싸고 직군별 인식이 상이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장애라는 절망 앞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문장에 대해 언론인 응답자의 57%는 ‘비하 표현이 아니다’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 반면, 장애인단체 종사자의 57%, 학계의 79%는 ‘비하 표현’이라고 인식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차이를 “언론인은 표현의 맥락과 의도를 중심으로 판단하지만, 장애인단체와 학계는 재현 방식 자체의 차별성을 문제로 본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 ‘빙판의 메시’ 등 감동·극복 중심 표현에 대해서도 응답이 갈렸다. 평창패럴림픽 보도에서 “빙판의 메시”로 소개된 표현에 대해 언론인의 79%는 ‘비하가 아니다’라고 응답했지만, 학계와 장애인단체는 절반 이상이 ‘비하’라고 봤다. “장애인의 성취를 ‘초인적 극복’으로 묘사하는 감동 서사는 장애인의 일상성과 다양성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장애를 극복한 삶”을 강조한 기사나 “○○예술단은 음악으로 장애를 극복했다”는 표현에는 직군을 불문하고 비하 인식이 낮았다. 연구진은 “장애극복 담론이 사회적 미덕으로 수용되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딸의 장애를 업보로 여기며 절에 가서 기도했다”는 문장에 대해서는 전 직군의 70% 이상이 ‘비하 표현’으로 응답했다. 장애를 개인적 도덕성이나 가족의 죄의식과 연결 짓는 서사에 대해서는 비교적 공통된 부정적 인식이 확인됐으며 또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꿀 먹은 벙어리", "이념의 자폐증" 등 부정적 비유로 장애를 사용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모든 직군에서 비하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
‘자폐를 앓고 있다’, ‘절름발이 정책’ 등 의학적 혹은 비유적 표현에 대해서는 언론인의 절반 이상이 비하가 아니라고 답했지만, 장애인단체와 학계에서는 절반 이상이 명백한 차별적 언어로 인식했다. 연구진은 “이는 미디어 언어가 여전히 의학적·결핍 중심의 인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비하 기준 사회적 합의 필요”… 정책 개선 방향 제시
보고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 관련 표현의 사용이 단순한 언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기준의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했다. 특히 응답자 간 인식 차이는 “미디어 언어의 해석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는 향후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공통 기준을 마련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장애비하 표현을 줄이기 위해 다섯 가지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정부와 언론단체, 장애인단체가 협력하여 장애 관련 보도 언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때 단순한 금지 목록을 넘어 포용적 대안 표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자, PD, 편집자 등 언론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정기적인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언어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언론 보도 모니터링 및 방송심의위원회 등에 장애 당사자의 참여를 제도화하여, 보도 언어에 대한 당사자 관점이 지속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의 상시 모니터링 체계 구축과 자율·공적 규제의 병행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복적으로 문제 표현을 사용하는 언론사에 대한 제재·시정 조치를 제도화하는 한편, 각 언론사 내부 윤리강령을 강화해 자체적 점검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언어가 사회 인식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대중 인식 개선 캠페인과 교육 콘텐츠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일상 언어 속 장애비하 표현의 문제를 꾸준히 환기함으로써, 언론 보도뿐 아니라 시민 담론 전반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장애비하 표현, 언어를 넘어 제도의 문제로 봐야”
보고서는 “비하 표현은 언어 차원을 넘어 사회적 권력관계와 담론 구조, 제도적 지원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안형진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미디어 언어의 인식 차이를 통해 사회적 시각과 제도적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장애를 극복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다루는 관행을 넘어, 장애인의 다양성과 일상성을 존중하는 언론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언론인, 장애인단체, 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 구조를 마련해 장애 관련 보도의 언어 기준을 구체화하고, 이를 정책과 제도로 정착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작성자김영연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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