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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난민과의 공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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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난민으로서 난민캠프에서의 삶을 나누고 있는 누어의 노습
 
영원히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불편한 매트리스 위에서 여러 번 뒤척거리다 몇 번을 자고 깨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때마침 거실 창문 밖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아잔(Ezan, 하루 5번 이슬람에서 기도를 행하기 전에 내는 일종의 외침) 소리에 모든 걸 체념하고 침실을 나섰다. 새벽 4시 30분. 이제 여기서 생활한 지도 1년이 넘었는데, 왜 나는 아잔에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생각하며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오늘처럼 힘이 필요한 날을 위해 아끼고 아껴 놓은 한국산 믹스커피를 하나 꺼내어 조심스레 찻잔에 털어놓는다. 이제 이것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득하다.
 
‘오늘 하루는 꽤나 길겠군.’
 
잠이 덜 깬 상태로 베란다 창살 너머로 보이는 이곳 콕스바자르의 새벽 풍경을 마주한다. 아주 조용하고 평온한 거리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늘 어디선가는 사람들이 둘셋 모여 이야기하고 있고, 이 시간에 동네를 점령한 개들은 영역 다툼을 하느라 새벽시간 평온한 공기를 사정없이 휘젓는다. 아주, 일상적인 새벽 풍경이다.
 
커피가 준비되었으니, 그제야 눈을 떠 본다. 이제야 알았다. 지난밤 왜 그토록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는지, 왜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건지. 바로 몇 시간 뒤, 여전히 이른 아침부터 시작될, 내게는 꽤나 어려운 특별한 업무가 있기 때문, 바로 미디어(media) 미션이다. 본부에서 글로벌뉴스팀이 로힝야 난민을 취재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틀 전이었고, 그들이 취재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가 장애가 있는 난민의 삶이란 걸 알았을 때, 나는 기쁘기도 했고,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번 미디어 미션의 목적이 펀드레이징을 위한 영상 제작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조금 더 복잡했던 것 같다.
 
↑ 누어가 평소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주민센터 근처 시장의 모습
 
날이 밝아오고, 약속 시간에 맞춰 글로벌 뉴스팀을 만나 간단하게 인사하며 오늘 일정과 인터뷰할 사람들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우리 사업의 수혜자로서 의 수동적인 장애인이 아닌, 우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난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로 준비된 인터뷰 대상자들. 브리핑을 마친 후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잘 모르겠다.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역시 미디어 분야 사람들, 쉽지 않다.
 
 
먼저 도착한 곳은 캠프 12, 몇 개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내리고, 좁고 비틀어진 사잇길을 요리조리 피해가듯 나아가다 보니, 저기 우리의 목적지인 주민센터가 보인다. 처음 만나 인터뷰한 사람은 18세의 모하마드 누어, 누구보다 쿨한 표정과 수줍은 듯한 미소가 멋진 청년이다. 정도가 심한 뇌병변 장애가 있는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집(shelter)과 그가 청년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주민센터에서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2019년부터 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계기는 이랬다. 2017년에 발생한 대이동(Influx) 때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 정착한 이후, 그는 불편한 몸과 더욱더 불편한 주변 환경 때문에 매일을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코로나의 공포가 캠프를 덮게 되었고, 그는 더욱더 세상과 멀어지는 듯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같은 난민이면서 스스로를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이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코로나 예방 및 건강관리 등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라는 생각에 무작정 주민센터를 방문했고, 그 일을 계기로 그는 현재까지 매일 센터로 출퇴근하고 누구보다 우선해서 지역주민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상적인 내용들로 인터뷰를 진행하다, 너무나 평범한 질문 하나에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디 살아요? 센터에서 얼마나 멀어요?”라는 질문. “2분 거리에 살아요. 걸어서. 당신에겐.” 그는 대답했다.
 
“누어, 당신에겐 요?” 난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 나갔다. “1시간 정도, 날씨가 나쁘지 않으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다음 질문들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범한 질문이었고, 평범한 대답이었고, 특별히 잘못된 질문 내용도, 답변 내용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그와 이야기하고, 그가 지역주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그 수줍은 미소를 영상에 담았다.
 
모든 인터뷰와 영상 촬영을 마치고, 나는 동료들이 잠시 쉬는 틈에 좀 전에 알아두었던 그의 집을 찾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18세 청년 누어가 손 딛고 지나갔을, 힘없는 두 다리가 쓸려 갔을, 그 자리들을 바라보며, 오늘 인터뷰 내내 신경 쓰였던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그의 다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오늘따라 난민캠프에는 유난히 모래바람이 거세고 눈이 따갑다.
 
↑ 장애를 가진 난민으로서 난민캠프에서의 삶을 나누고 있는 누어의 노습
 
기고를 마치며,
앉아서 지난 1년간 <함께걸음>에 기고한 글들을 차분히 읽어 보았다. 그 어느 글도 쉽게 쓰인 것들이 없었고, 그 어떤 글도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글재주도 말재주도 없던 내가 글을 쓰겠다고 승낙한 걸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마감이 겨우 글을 완성하게했지만, 사실 많은 글은 미완성인 채로 내 손을 떠났다. 제목을 써서 보낸 적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고, 내 글은 문법도, 어순도, 표현도 엉망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가능하면 거르지 않고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해 보지만, 사실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 일상에서 만나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혹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 내용이 있는지 여러 번 읽어 봐야 했다. 내 맘 대로 글을 쓰고 싶어 때로는 기사처럼, 때로는 논문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함께걸음>은 그 모든 것들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를 실어 주었다. 나는 그런 <함께걸음>에 미안함을 느꼈고, 동시에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이제는 <함께걸음>을 애정하는 한 명의 애독자로 남아 응원하려 한다.
작성자글. 김광희/유엔난민기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사무국 장애통합전문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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