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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애계

한국과 스위스의 상이한 정치체계

여기는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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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국외에 거주하는 저는 20대 대선 투표를 위해 인터넷으로 재외부재자 신청을 마쳤습니다. 3월 초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2월 말에 스위스 베른에 위치한 주 스위스 한국 대사관에서 대선 투표를 할 예정입니다. 한국은 선거철마다 여러가지 공약을 내걸고 선거운동을 하는 정치인을 뽑는 형식이죠. 그 정치인이 내건 공약의 내용은 물론 정당 소속도 중요하고, 그가 걸어온 길도 살펴보게 됩니다.
스위스는 정치체계나 선거 구조가 한국과 매우 다릅니다. 철저한 연방제를 고수하는 스위스에서는 국회에서 7명으로 구성된 연방 내각을 뽑습니다. 이들은 각 부처의 수장 역할을 하게 되니 한국의 장관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 7명 중 매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라의 수장직을 맡게 됩니다.
 
국회의원 및 지역구 정치인은 한국처럼 해당 주민의 투표로 정해집니다. 하지만 정치인마다 세세한 공약을 내걸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소속 정당에 따라 활동 방향성만 간단하게 제시하는 형식으로 지역구마다 주민의 투표로 선출합니다. ‘스위스 전통을 보호하자’라든지, ‘다함께 사는 우리 지역’ 정도입니다. 내가 거주하는 최소 행정구역의 살림에 직접민주주의로 언제든지 참여가 가능한 정치체계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지역 주요 사안에 대해 가지는 관심은 지대합니다. 연 몇 차례 투표권이 있는 주민들이 모여서 거수로 크고 작은 사안에 대한 입장을 직접 표명하고 결정합니다. 주민들의 정치 참여가 적극적인 곳이다 보니 지역 정치인들은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온 다양한 직업군의 주민이며, 그 지역의 행정에 참여해 온 사람들입니다.
 
국민투표는 연중행사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연방 정책에 대해서는 연 2~4회의 국민투표를 통해 시행 여부를 판단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정치인들의 입장은 본인들이 뽑히는 선거철 동안 제시했던 공약보다 국민투표에서 어떤 입장을 표명했는지에 따라 명확히 드러납니다.
2021년에 4차례 치렀던 국민투표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투표안은 ‘코로나법’ <COVID-19-Gesetz> 이었습니다. 대부분 법령과 행정 절차가 지역마다 다른 스위스에는 백 년 만에 경험하는 새로운 유행병이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지역 정부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고, 한국 같은 중앙정부 체계와는 달리 스위스의 연방정부에서는 각 지역자치체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도 국민의 불만도 통제가 힘들어지자, 바이러스 전파를 막고 소상공인이나 직장인 등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신속히 돕는 방안을 담은 법안의 발의가 국민투표에 부쳐졌습니다. 이 법안은 지난 여름 스위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통과되었습니다. 연방제지만 범유행병 대처에는 중앙집권식의 신속한 지시와 행정 처리가 가능해지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이렇게 국민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발의로 진행되는 국민투표도 있는가 하면, 특정 문제에 대한 정책을 국민들이 직접 제시하고 국회의 심사를 거쳐 전 국민의 표결에 부치는 국민발의 <Volksinitiative>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사회 문제를 경험한 이해집단들의 발의를 시작으로 18개월 내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만 국민발의로 채택되어 국회의 심사를 거쳐 국민투표에 부쳐지게 됩니다. 이 과정은 최소 3~4년이 걸리는 긴 과정입니다. 그 긴 과정 끝에 발의안이 부결되면 같은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됩니다. 허나 수많은 국민과 이해집단이 하나의 주제로 국가의 정책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2020년에는 의미 있는 국민발의 투표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성육아휴직제가 없었던 스위스에 20일의 유급 남성육아휴직제를 2022년부터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 예산확보 문제를 놓고 국회와 발의 단체 간의 줄다리기 끝에 발의 4년 만에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스위스의 장애인정책
스위스 장애인 관련 정책이 선거와 정치인을 통해 어떻게 정책으로 실현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이렇듯 직접민주주의에 기반한 스위스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는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성인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참정권을 통해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장애인단체연합은 다양한 장애인 관련 정책이나 혜택보다는, 장애인의 동등한 참정권과 취업 기회를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일례로, 1998년 전국장애인단체연합의 주도로 ‘장애인에게 동일한 권리 부여’ <Gleiche Rechte fuer Behinderte>라는 이름의 국민발의 투표가 발의되었습니다.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과 생활고 방지를 위해 교육 및 취업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발의안은 국민 10만 명의 서명과 국회의 심사를 거쳐 발의한 지 5년 만인 2003년에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부결되었습니다. 국민발의에서 요구하는 장애인 자립과 취업 교육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을 위한 재정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학교/돌봄서비스 등 사회적 인프라 또한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반대표를 던진 국민들의 주된 의견이었습니다.
 
포괄적 장애인정책에 대한 요구는 현재진행형
스위스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2008)을 비준하였으며, 이로써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있는 생활, 사회참여, 사회적 포용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장애인단체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상해장애연금(IV)의 보조지원제(Assistenzbeitrag)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장애인단체들은 좀 더 포괄적인 장애인정책 국민발의(Inklusionsinitiative)를 발표했습니다. 본 국민발의의 요구사항은 국가의 포괄 적인 지원을 통해 장애인이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영역에서 개인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인적/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공동 발의자인 이슬람 알리야(Islam Alijaj)씨에 따르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개개인의 사회참여, 인간으로서의 존중, 그리고 삶에 대한 선택권 보장을 위해 이번 국민발의를 시작했다 합니다.
 
↑Islam Alijaj 씨 트위터 캡처
본 국민발의는 내년 가을에 국민 서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서명도 받을 계획입니다. 장애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인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더 나아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스스로의 삶과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를 찾아가는 여정이 참 기대됩니다.
 
장애인의 정치 참여, 그리고 모두를 위한 투표권
스위스에서는 포괄적인 장애인정책 외에도 장애인의 정치 참여와 투표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직접민주주의로 유명한 스위스에도 약 300만 명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습니다. 그중 절반은 미성년자이고, 다른 절반은 장애인이거나 스위스 국적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아래 사진하단의 링크에 나온 안드레아는 34세의 젊은 농부입니다. 농장에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자립한 지적장애인입니다. 그는 농장 곳곳에서 크고 작은 일손을 보태고 있습니다. 농장에 배치되면서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농장만이 그의 생활 반경은 아닙니다. 안드레아는 본인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 합니다.
안드레아는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습니다(Trisomie-21). 하지만 그로 인해 농장에서 일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가축의 분뇨를 치우든, 사료를 주든, 빨래를 널든, 그의 염색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작년 5월부터 농장주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근로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오랫동안 농장에서 자기 능력을 최대한 펼치고 싶다고 합니다.
안드레아의 유년은 쉽지 않았습니다. 14세에 아버지를 잃고, 외로움과 사람들의 오해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안드레아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입니다.
 
 
2013년 1월부터 성인보호법(Erwachsenenschutzgesetz)이 시행되면서부터 안드레아는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8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선거권을 가진 것입니다.
안드레아에게 정치는 중요합니다. 우리 일상 모든 곳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중증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안드레아가 농장에서 일하지 않는 날이면 다른 일을 합니다. 장애인단체에서 연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소규모 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글도 씁니다.
그가 정치에 적극적이고 스스로의 관심사를 찾아간다고 해도 장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선거 정보지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로 작성되기 때문입니다. 법정후견인이 선거 정보지를 쉽게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결정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라 합니다.
 
스위스의 법정후견인 제도
성인보호법(Erwachsenenschutzgesetz)에 따라 관련 당국은 판단력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력이 부족한 성인에게 법적으로 대리할 사람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법정후견인은 소득이나 자산 관리와 같은 개인적인 사항에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안드레아처럼 다운증후군(Trisomie-21)이나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에게 법정후견인이 지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 모두의 정치 참여를 위한 노력
2020년 11월 제네바 지역 투표에서는 모든 장애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것인지를 투표로 결정하였습니다. 결과는 75%의 압도적인 지지. 제네바 지역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은 이제 지역 투표에서 선거권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선두로 다른 지역에서도 중증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의 선거권 부여를 위한 정치 캠페인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전국적인 움직임을 통해 국회나 국민발의로 발전되진 않았지만, 언론과 장애인단체연합의 움직임은 그 여느 때보다 활발합니다. 장애인들은 여러 가지 혜택보다 장애 여부나 종류에 상관없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요구합니다. 앞으로 모든 장애인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쟁취를 향한 움직임이 기대됩니다. 
작성자황효빈/스위스 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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