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재난에서도 꼭 고려되어야 할 장애인 > 해외소식


전쟁과 재난에서도 꼭 고려되어야 할 장애인

로힝야난민과의 공존일기

본문

 
5분 13초.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져 영원히 곤두박질칠 것 같은 주식창을 덮고, 잠시 음악이나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티브이 채널을 돌렸다. 돌아가는 채널에 제법 익숙한 이가 나와서 잠시 멈췄더니, 아니, 이게 누구야.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CNN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와 내가 애정하는 CNN 외신기자인 아르와 데이먼(Arwa Damon)이 아닌가.
그들이 한 화면에 잡혔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딘지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앤더슨은 우크라이나 리이브에, 아르와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었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의 배경에는 각각 새벽 4시 33분과 3시 33분이 표기되어 있다. 이미 꽤나 더워진 이곳 방글라데시의 아침을 뒤로하고 화면 속 깜깜하고 을씨년스러운 그곳을 상상하니, 한동안 머릿속이 멍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잠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한 러시아의 침공이 예정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15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사회는 유엔 결의안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미국을 포함한 개별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인도주의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세계식량기구(WFP), 유엔난민기구(UNHCR), 유엔아동기금(UNICEF) 은 긴급구호 활동을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의 안정적인 제3국 정착을 지원하며 기본적인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수가 약 2백 70만 명이고, 그들 대부분은 장애 때문에 피난길에 오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일상이 공포가 된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동부에는 많은 사람이 인도주의 위기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데, 2021년 공개된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 중 약 13%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더 고려돼야 하는 장애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과 보호를 보장해 줄 곳을 찾는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겐 그 여정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 대부분의 피난계획이나 긴급대피 정보는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발달장애인 등 정보 접근성에 취약한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지체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자 등에겐 대피소나 피난처의 물리적 접근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합리적 편의 제공(Reasonable Accommodation)은 먼 나라 이야기이며, 함께 피난길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곁에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그 결과, 그들은 긴급상황에서도 대피하지 못하고 남겨지거나, 남겨졌기 때문에 더욱 끔찍한 폭력과 위험에 노출된다.
국제장애연합(International Disability Alliance)의 대표이자, 유럽장애포럼(European Disability Forum)의 의장이기도 한 야니스 바다카스타니스(Yannis Vardakastanis)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 속 보이지 않는 장애인의 삶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한다. 그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모든 행위자가 국제인도주의법과 국제인권법을 지킬 것과 인도주의 활동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기구 간 상임위원회(Inter-Agency Standing Committee)의 기준을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를 비준한 당사국으로 협약 제11조(위험 상황과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가 명시하는 위험 상황에서의 장애인 보호와 안전 보장에 대한 양국의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
 
‘뉴스성’이 없어도 난민에게는 치명적인 화재
며칠 전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정례회의에 참석했는데 그날따라 회의실 공기가 무겁다. 전날 밤사이 로힝야난민 캠프에서 불이 나서 또 한바탕 큰 소동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 임시거처가 대나무와 비닐로 만들어져 있고, 그마저 빽빽하게 붙어 있어 언제나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알려지지 않는 크고 작은 화재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작년 3월 초에 발생했던 화재와 같이 16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5만 명의 집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뉴스성’이 없는 대부분 화재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전날 화재는 다행히 큰 사상자 없이 진압되었지만, 또 많은 사람의 거처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화재가 발생했던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협력 기관인 Humanity and Inclusion(HI)을 통해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 중 장애인이 없는지를 파악했다.
 
화재에 취약한 환경을 알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기구 및 단체들은 화재 예방과 화재 시 대피, 화재 진압 및 피해 복구 등에 대한 교육과 실습 등을 반복한다. 내가 근무하는 곳 또한 지역 기반 보호(Community-based Protection) 접근을 통해 당사자인 난민과 함께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화재 예방과 재건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며, 현장관리팀(Site management unit) 등 관련 팀들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반드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 기구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협력 기관이 준비하는 화재 예방 교육자료나 실습 매뉴얼 등이 다양한 장애가 있는 난민을 고려하여 작성된 것인지, 긴급한 상황에서 대피하기 위한 적절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분석하여 의견을 전달하고, 필요한 경우 수정을 요구한다. 그게 충분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어보신다면, 답은 당근, 아니다. 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는 게 현재 내가 답할 수 있는 정도다. 인도주의 위기 상황 ‘안’에 들어와 있으면, 내가 지금까지 보던 그 아름다운 문서의 내용들의 활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힘으로 사라지는 활자를 잡아 끌어와 만들 수 있는 단어를 조합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난 그런 일들을 반복한다. 그게, 참 어렵다.
 
 
5분 13초
앤더슨 쿠퍼와 아르와 데이먼이 전달하는 5분 13초의 짧은 뉴스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대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폴란드 정부가 지원한 인도주의 기차(Humanitarian train)를 타고 이동하는 승객이 바로 장애가 있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의료진이 탑승한 기차에는 장애가 있는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승객석을 빼고 매트리스를 깔아 놓은 객실)과 긴 이동 시간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응급 장비들이 보인다. 자폐 성향이 있는 10살의 딸 베로니카와 함께 기차에 몸을 실은 엄마 오레나와 그의 또 다른 딸 메리의 인터뷰는 이런 일들에 너무 쉽게 공감하다 못해 푹 빠져 버리는 내 맘을 또 찢어 놓는다. 딸을 살리기 위해 조국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국가를 대상으로 너무 큰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내가 그곳에 있었으면, ‘아니요. 당신은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고, 그 용기와 그 많은 희생에 감사해요’라고 할 텐데. 난 너무 멀리 있다. 나는 또 횡설수설하며 쓴 글을 서둘러 마무리해야겠지만 이 글의 마지막은 앤더슨 쿠퍼가 뉴스를 전하며 꽤나 붉어진 눈을 애써 감추며 뱉은 짧은 말을 전하는 걸로 대신하려 한다.
 
“이게 꽤 진부한 말로 들릴지 알고 있지만, 오늘 나는 또 한번 이 세상이 이런 어머니들에 의해 지배된다면 많은 것들이 정말 다른 결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밤 대피하는 기차 안에서도 남아 있을 가족의 안부를 묻기 위해 여러 번 전화를 시도하고, 밤새 기차 안에서 아픈 아이를 돌보며, 또 다른 아이가 기차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오레나를 생각하면, 정말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그냥 정말 끔찍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작성자글. 김광희/유엔난민기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사무소 장애통합전문가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3,4월호 표지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연월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 : 함께걸음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