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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하루, 주목받지 못하는...

로힝야난민과의 공존일기

본문

 
 
 
“Hey Kay, I need to see you right now.”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앞뒤 문맥에 대한 친절한 설명 없이 그저 나를 만나러, 우리 사무실로 오겠다는 그녀에게, “Sure, I will be here at my office.”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콜롬비아 국적으로 Communication Officer로 근무하고 있는 동료인 레지나(Regina)는 보통 이렇다. 그녀는 하루 24시간 일하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데, 그래서 조금 까칠해 보이기도 하고, 불평도 많지만, 또 많은 부분 호탕한 면도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런 그녀가 좋았는데, 아마도 그녀 옆에 있으면 느껴지는, 그녀의 일에 대한 열정과 거짓 없이 뿜어대는 그녀의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5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표정을 보니, 뭔가 상기된 얼굴. 옷을 보니, 우리가 난민캠프 방문할 때 반드시 입어야 하는 회사 조끼를 입고 있다. 그녀는 막 캠프에서 돌아왔고, 자기 사무실에도 가기 전에 내게 들린 걸 알 수 있었다. 인사는 눈 한번 마주치는 것으로 끝내고, 불쑥 핸드폰 화면을 내 얼굴에 내민다. 그리고는 4분 정도로 보이는 영상을 보여준다.
 
“Watch this.”
 
‘흥, 인사 정도는 웃으면서 할 수 있잖아.’ 속으로 투덜대며 작은 화면 속 한 청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현란한 손동작과 표정으로 마치 팬터마임 원맨쇼를 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소리가 나지 않아 볼륨을 최대한 높여 봤지만, 녹화되었을 장소의 생활소음만이 더욱 크게 울려 귀를 따갑게 한다.
 
‘아, 어쩌면 농아인 일 수도 있겠구나.’
 
4분간 이어진 그와의 인터뷰 영상은 말 그대로 자막도 없고, 통역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정확한 뜻은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영상을 다 본 후 레지나의 호기심 어린 눈과 ‘해맑은’ 질문, 즉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아, 케이?”에는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몰라.”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레지나는 조금 실망한 듯 보였으나, 이내 “내가 느끼기엔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어떻고, 불이 났을 때 이랬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가 말할 때 표정이나 적극적인 몸짓, 손짓이 좋아. 어떻게 하면 그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난 네가 이 아이를 꼭 만났으면 좋겠어.”
 
바로 이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아마도 이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을 가지면서.
 
 
이후 레지나를 다시 만난 것은 1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던 것 같다.
 
“Kay, you gotta check this out.”
 
멀리서부터 나를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레지나의 표정을 보니, 왠지 나도 기대가 된다. 그녀는 지난주 내게 보여줬던 인터뷰 영상 속 그 아이가 멋지게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그 영상을 다시 보여준다. 이번에는 자막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 아이 이름은 모하메드 하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아썬(Asun)이라고 불러. 13살이고, 2017년 10월에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방글라데시로 피난 왔으니 그 당시엔 8살이었겠지. 근데 말이야, 캐나다 출신의 유명한 포토저널리스트인 Kevin Frayer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작가가 2017년 당시 미얀마의 박해를 피해 피난왔던 로힝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 한 아이가 구호트럭에 기대 절망적인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사진이야. 그 사진은 결국 2017년 Time Magazine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 100’에 오르기도 했고, 결국 그 작가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아. 맞아. 바로 그 사진 속 그 아이가 아썬이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아썬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했어. 엄마는 아썬이 태어난 날 돌아가셨고, 그는 삼촌과 숙모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지. 농아인이고 청각장애도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잖아? 근데 아썬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있는데, 그게 꽤나 효과가 있다고 들었어. 마을 사람들이 그 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썬의 멋진 손동작과 몸짓, 그리고 표정을 보며 소통하는 것을 기뻐한다고 해. 정말 대단하지 않아? 아마 캠프 내에 아썬 같은 장애를 가진 난민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례를 확인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면 어떨까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어?”
 
 
▲ 출처 getty image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마 내 실망한 표정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레지나에게 실망한 건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전문영역인 홍보 분야에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와 엄청난 추진력으로 누구보다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고, 역경을 이겨내고 밝게 살아가고 있는 장애 청년의 이야기들을 발굴하여 잘 홍보한다면 기구 차원에서도 분명 이점이 있을 것임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이럴 때 드는 마음을 쉽사리 바꾸지도 못한다. 그래서 결국,
 
“레지나, 장애청년에 대해서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아썬의 이야기는 나도 참 감동적이라고 생각해. 나도 그 청년 담에 꼭 만나보고 싶어. 근데 말이야, 이런 사례들을 발굴해서 홍보하겠다는 너의 의견은 조금 재고해 봤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아직 캠프에는 너무나 끔찍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버티고 있는, 살아가고 있는 장애를 가진 난민이 무수히 많거든. 너도 알꺼야. 난 우리가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눈을 번쩍 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너와 함께 그들의 ‘진짜 하루’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 그걸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나는 봤다. 레지나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그리고 느꼈다. 어쩌면 이 주제는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논의가 필요할 수 있겠다라고. 장애인을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만 하려는 레지나를 원망하냐고? 천만에. 나는 그녀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녀는 그녀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고, 심지어 장애를 가진 청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오히려 고맙다 고 느낀다.
 
평소에 자주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는 문제를 맞닥 뜨렸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는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일상에서 갑자기 마주하게 되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불편함을 느끼며 그 불편함이 거부감이나 과도한 친절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어 내고 때론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아주 먼 옛날 학창 시절 강의실에서 배울 땐, 분명 정치는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배웠는데, 도대체 장애에 관한 이 과정은 언제까지 잠재적 대립관계와 갈등인지 단계에 머무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 또 글이 옆으로 가려고 하니, 다시 정신줄을 잡아 본다.
 
 
▲  출처 unhcr 방글라데시 facebook 페이지
 
 
난민캠프에서 장애통합전문가란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프레임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난민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 지원이 많은 경우 장애인에게 접근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생활용품 및 식량 배급 방식이라던지, 청각장애인, 농아인 및 발달장애인 등을 고려하지 않는 보건 및 심리치료 서비스 등 무수히 많은 서비스들에 장애를 가진 이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내가 캠프에서 만나는 장애를 가진 이들은 비장애인이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을 더 높은 강도로 겪고 있으며, 거기에 덧붙여서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다른 어려움들도 많다. 누군가가 내게 그러한 것들이 좀 나아지고 있냐고 물어 본다면, 나는 자신 있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 실제로 몇 개의 훌륭한 사례를 소개하여 도너(Donor)에게 감사를 표하며 훌륭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회사가 칭찬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왠지 그렇게 되면, 내가 캠프에서 만나는 그분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맘에 걸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려운 하루가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제공. 김광희/유엔난민기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사무소 장애통합전문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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